‘경기가 불황일 때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는 속설이 있다. 사회의 어두운 분위기를 반증하여 나오는 얘기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지만, 심리적인 측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하겠다.
옷은 사회구성원의 성격과 문화를 보여주기에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제2의 피부로 불리는 옷, 개항기에서 식민지시대에 이르는 근현대에 우리의 의복이 어떻게 변화되었으며 국민 생활양식에 어떤 변화를 몰고 왔는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의 옷인 한복을 벗고 양복과 양장을 입게 되었을까? 앞서 말한 개항기와 식민시대를 거치며 근대의 물결을 타고 사람들은 일부 강압에 의해 또는 유행의 물결을 타고 의복의 변화를 겪게 된다. 특히 신분에 따라 규제가 많았던 의복의 변화는 근대 이후 나타난 평등의식이 퍼져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남자의 경우 먼저 제복이 바뀌게 되고, 인텔리의 상징인 양복을 접하기에 이른다. 당시 엘리트 집단 내에서 양복이 유행했는데, 배는 고파도 양복을 입으려는 집착이 강해 고물상에서 양복을 구입하기도 하였다. 유학생들이 들어오면서 양복이 크게 번져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에 양복 기술자 양성 기관인 양복 실습소가 생겼으며 양복 고물상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여성도 우산과 양산으로 오랜 전통이었던 장옷을 대신하며 서서히 개량한복에서 양장을 입고 머리를 자르고 파마도 하며 근대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신여성을 가리키는 말인 모던 걸(modern girl)은 당시 남성중심의 편견에 시달림을 받으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현대 여성을 모단(毛斷)걸이라 하며 머리 자른 여자로 비틀어 표현하기도 하고 보수적인 남성들은 ‘못된 걸’이라 부르며 조롱도 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복도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끼와 마고자가 대표적이라 하겠는데, 우리 전통한복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두루마기의 기운 소매 부분이 주머니 역할을 하였다. 한복의 조끼는 서양 의복에서 주머니 기능을 받아들인 경우이며 마고자도 보온의 기능을 더하고자 입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새로운 패션에 적응하고 반응하는 것은 새로운 의식형성과 이어지는 일이다. 모든 변화는 자의든 타의든 혼란과 갈등을 동반하며 때로 폭력성을 수반하기도 한다. 단발령 등 우리의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오랜 옛날로 여겨지는 1930년대 당시에도, 사치와 지나친 유행에 대한 비난과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못 한다는 얘기가 신문을 통해 풍자적으로 나오는 걸 보면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살이의 근본은 크게 다르지 않은가 보다.
정상종 한국문화원연합회 경기도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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