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학교에서 봄·가을 소풍가는 날이 미리 정해지면 왜 그리도 날짜가 안 가는지, 그 날이 손꼽아 기다려지곤 했다. 그러다 정작 소풍 가는 날이 되면 왠지 들뜬 마음으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소풍은 주로 걸어서 갔다. 좀 먼 곳은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 내려서 걷기도 했다. 거의 매일 쳇바퀴 돌듯 지루한 학교생활에 얽매여 있다가 야외로 소풍을 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즐거움이었다. 오가는 동안 친구들과의 대화와 장난치기, 둘러앉아 나누어 먹는 점심, 그 후에 벌어지는 공차기, 등말타기, 술래잡기, 보물찾기 등 재미있는 게임, 그렇게 하루 종일 뛰놀다 돌아오는 길에는 때로는 지쳐서 피곤하기도 했다. 어린 날 소풍의 추억은 이렇게 아름답고 즐거운 것으로 남아있다.
우리네 인생길도 소풍길 같은 것이다. 이 길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말로 우연히, 어쩌면 조물주의 섭리로 시작되는 길이다. 미지(未知)의 영원한 침묵의 세계에서 밝고 햇빛 가득한 이 세상으로 잠시 소풍을 나온 것이다.
인생 70~80년, 어찌 보면 긴 세월이나 영겁(永劫)의 눈으로 보면 그야말로 짧은 소풍길인 것이다. 누구나 나올 때는 혼자 나와서 평생을 같이 할 좋은 반려자를 만나고, 가족과 수많은 친구·동료들을 만나지만, 마지막에는 역시 혼자서 돌아가는 소풍길.
모처럼 나선 길이기에 이 길은 힘들고 짜증나는 어려운 길이 되기보다는 즐겁고 아름다운 보람 있는 길이 되어야 한다. 맑은 하늘에 흰 구름 둥실둥실 떠 있고 저 멀리 호수 건너로 산줄기가 겹겹으로 아련히 보이는 길. 가을바람에 코스모스 산들산들 피어 있는 걷기 좋은 상쾌한 길.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소풍길은 늘 그런 길이었다.
우리가 희구하는 복지선진국은 바로 이런 길이다. 산림을 푸르게 가꾸고 길도 평탄하게 닦고 길가에 아름다운 꽃과 가로수도 심어 주변 풍경을 다듬어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 서로 도우며 손잡고 같이 걷다가 도중에 비바람을 만나면 잠시 쉴 곳도 만들어 놓고 돌아오는 길 막바지에 피곤하여 걷기 힘들어질 때 편히 타고 갈 것도 마련하여, 쾌적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여유 있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다가야 한다.
인생길이 이처럼 편안하고 아름다운 소풍길이라면 모두 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다투지도 욕심내지도 무리하지도 않고 서로 도우면서 오순도순 즐기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이런 복지사회를 하루 속히 만들어 갑시다.
인경석 경기복지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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