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민간의 전문성 인정돼야

몇 시간을 멍하니 있다가 돌아섰다. 법원에서 명령을 받아 피고인 감정을 하러 갔었지만 구치소에서 거절을 당했다. 재판을 위해 요청한 감정임에도 구치소에서 피고인 면담을 못하게 하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보안과의 내규가 그렇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전문심리위원제도가 도입된 초기에는 이렇지 않았지만 최근 구치소에서의 피고인 면담은 계속 거절되고 있다.

외국의 경우 재판을 할 때나 구속 여부를 결정할 때 피고인의 심성이나 죄질은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법원은 다양한 전문인력을 이용해 정신감정부터 재범가능성까지를 평가한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이같은 평가는 소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더욱이 선진국에서는 박사학위를 받고도 상당한 경력을 갖춘 민간전문가들이 할 만한 일을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공무원들이 대신하고 있다.

민간영역 전문성 인정 못 받는 현실

이같은 상황을 당면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의 공적 영역과 민간영역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외국 같으면 당연히 인정할만한 민간영역의 전문성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민간인이라는 이유로 해서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더욱 답답한 노릇은 실상하를 가리지 않고 공조직의 구성원들은 이에 대해 관료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다.

해당 영역에서는 그나마 전문성을 인정받는 필자에게도 상황이 이럴 진데 그렇지 않은 연구자들은 얼마나 어려울까? 인터넷으로 검색되는 외국의 논문에서 만나게 되는 수도 없이 많은 범죄연구들은 우리 처지에는 격세지감이다. 민간 연구자들이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에게 아예 접근조차 못하게 하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이 같은 연구의 결과물들은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다. 원인을 알아야 올바른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나, 문제가 터질 때마다 원인 탐색보다는 임기응변에만 몰두한다.

효율적 정책 위해 긴밀히 협력해야

성범죄의 심각성만 하더라도 인면수심의 성범죄자가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서야 사회적으로 문제임이 인식됐다. 하지만 수십 년 전에도 유사한 범죄는 우리 사회에 존재했었다.

현실 파악이 이렇게까지 왜곡된 연유는 아마도 그들에 대한 접근권이 민간연구자들에게는 열려져 있지 않았었기 때문일 것이리라.

과학기술의 발전은 정보에 대한 접근권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또한 과학적 접근으로 산출된 실증적 증거들은 효과적인 정책을 산출한다.

성범죄자들에 대한 거세약물법을 언급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 성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하여서도 거세약물의 효과성을 검증한 연구결연구결과물이 있던가 하는 의문이다.

외국 같았다면수도 없이 많은 연구들을 하고서야 나타날만한 법률을,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짧은 기간 안에 별다른 검증 없이제정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민간의전문 연구결과와 행정은 멀기만 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외국의 경우 형사정책 분야에서 가장 각광받는 논제는 바로 증거 기반정책(evidence-based policy)이다.

민과 관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형사정책의 효과성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밀접히 협력한다. 공기관에서 확보한 자료들을 민간연구자들에게 광범위하게 공개함으로써 다양한 정책의 효과성을 검증한다. 이때 연구들은 관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이 자원해 이뤄진다.

보다 적확한 정책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관은 민간전문가들의 능력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한다. 공조직에 의해 민간의 전문성이 인정받는 시대는 언제쯤 올까 궁금해진다.

이수정 경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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