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경찰에 대한 당부 말씀

경찰이 주폭을 처벌할 것이라고 한다. 다행한 일이다. 이는 주요 일간지 중 한 곳에서 우리나라의 빗나간 술 문화를 문제 삼으면서 국민의 공감대를 얻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만취한 난동꾼으로부터 힘없는 국민을 보호하자는 의지를 다시 한 번 천명한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최근 ‘경찰 혼’까지 언급하면서 쇄신위원회까지 발족시킨 경찰의 가시적 성과물인 것 같아 반갑다.

며칠 전 수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오원춘에 대한 사형선고가 있었다. 애당초 예상되었던 일이었지만 다시 한 번 끔찍한 사건이 떠올라 일상사에 쉽게 임하기 어려웠다. 사형으로서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 대한 사법정의는 이루어졌다 치더라도 아직 귓가에는 절명의 순간 구조를 요청하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었을 지를 상기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얼마나 간절히 경찰이 들이닥치기를 기다렸을까?

주폭, 강력 단속하겠다는 경찰

필자는 현재 배우자 살해사건을 지원하고 있다. 딸 둘이 있는 부부가 평생을 참고 살다가 인생의 노년기에 남편의 폭력을 더이상 참지 못하여 때리던 남편을 아내가 넥타이를 목에 감아 살해한 사건이다. 수백 장에 이르는 사건기록을 읽어보면서 남편을 결국 살해한 피고인도 피고인의 두 딸도 얼마나 여러 번 경찰에 구조를 요청했는지 실로 놀라게 된다. 어떤 때는 중학생 딸이, 어떤 때는 친척이 신고를 했음에도 왜 경찰은 폭력사건을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던 것일까?

물론 경찰 입장에서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112 신고로는 지금껏 위치추적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위기에 처한 사람을 쉽게 구조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는 경찰이 너무 쉽게 체포권을 발동하게 되면 국민의 인권이 쉽게 침해된다는 논란으로부터 야기된 결과이기도 하다. 경찰이 긴급한 대처의 의지를 갖는다 할지라도 이후의 형사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경찰만 과잉수사의 논란에 처할 수도 있는 문제 역시, 경찰의 발목을 잡는다.

신고자 보듬는 감성도 키워야

더욱이 신고 당시에는 흥분해 있던 피해자가 갑자기 변심하여 고소를 취하해버리면 경찰만 우스운 꼴이 되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경우의 수는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미온적 태도로 피해자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수원사건은 절대 절명의 순간에 경찰의 개입이 이 같은 염려들에도 불구하고 왜 꼭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최근 주폭 단속을 하겠다는 경찰의 의지는 단호한 것으로 보인다. 공권력을 침해하는 술주정꾼의 난동이 도를 지나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부하고 싶은 점은 그 같은 주폭 척결의 의지가 경찰의 권위를 유지시키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힘없고 어리석은 백성들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후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권력 수호의 강력한 의지보다는 어쩌면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것이 경찰로서는 더 필요한 요건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어린 아이와 여자들의 간절한 목소리로부터 그들의 고통이나 생명에의 위협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감수성이야말로 경찰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덕목이리라. 행정절차 상의 부담이나 논쟁에도 불구하고 단호히 일어서서 도움을 제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 것이 곧 ‘경찰 혼’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수 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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