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한산성 기운생동

남한산성 대역사의 큰 장이 새롭게 열렸다. 우리나라 최대 성(城) 남한산성의 복원정비와 남행행궁의 옛 모습이 완전 복원되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남한산성과 남한행궁 복원공사는 10년이 걸렸고 지난 5월24일 마무리돼 남한행궁에서 낙성연이 베풀어졌다.

남한산성은 한강 남쪽에 처음 나라를 개국한 백제의 주산이요, 성산이요, 진산이었다. 백제 건국의 임금인 온조대왕의 사당인 숭열전(경기도 유형문화제 제2호)이 그곳에 모셔져있는 연유다. 백제·고구려·신라, 삼국의 운명 또한 이곳에서 결정되어진 우리 역사의 절과 목의 땅이 남한산성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이곳에 성을 쌓아 주장성, 일장성이라 부르면서 중국 당나라를 이곳에서 물리쳤고, 고려에서는 항몽 의지의 결의를 다진곳이다. 조선왕조는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성을 쌓아 전란에 대비하여 유비무환의 교훈을 삼으면서 그곳의 역사적 의미를 잃어버리지 말자고 수어장대의 내부 편액을 무망루(無望樓)라 불렀다.

남한산성은 2천년간의 역사 속에서 성을 쌓고, 또 쌓고, 그리고 장구한 세월동안 보완 축성됐다. 규모면이나 성곽 축성술의 기술적인 다양한 측면에서도 성곽미의 백과사전적 의미를 갖춘 세계 유일의 성곽이다.

문화재청은 이미 세계문화유산 등재 잠정목록 국내 제1순위에 남한산성을 올려놓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너무나 당연한 귀결점인 것이다. 당연히 2014년 6월은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을 확정짓고, 큰 축제의 한마당을 펼치며 다시 돌아온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 재인식의 기회로 삼아 미래를 무궁하게 뻗어 나가도록 우리들의 노력이 보태져야 할 것이다.

수도권에 이러한 고원 분지형 산성과 산성 거류민(居留民) 제도를 도입해 산성 마을을 형성, 380여년을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도 남한산성은 우리만의 자랑이 아니라 세계인의 자랑이다.

남한산성에는 2천년 역사의 흔적들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산문화 교육의 장이다. ‘남한산성에 오르면 미래가 보인다’는 어느 초등학생의 작문의 글이 새삼 떠오르는 것처럼 우리 또한 미래의 큰 꿈을 남한산성에 올라 꾸어야 할 것이다.

100년 전 나라를 빼앗긴 우리들의 아픈 역사였기에 경도보장지의 남한산성과 남한 행궁의 역사마저도 허물어져 갔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쇄하여지더니 산성과 남한행궁, 그리고 산성리 마을까지 기운이 다하여 허물어지는 아픈 역사를 기록했다. 우리 민족이 이리 떠돌고, 저리 떠돌면서 역사의 교훈들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세월동안 민족의 얼이, 혼이 빠져나가는 아픈 역사를 살았다.

10년의 공사가 100년의 아픔을 한 번에 치유하여 그 기상을 다시 일으켜 세운 역군들이 있어기에 남한산성과 남한행궁이 복원 정비됐다. 대한민국 국민의 자랑스러운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주말이면 수많은 인파가 몰려 남한행궁을 관람하고 있다. 풀숲에 지나지 않았던 옛 터에 생기를 불어넣고 기운이 생동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탈바꿈시켰기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 대열에 동참하여 남한산성의 기운을 우리 모두 받아야 할 것이다. 이 기운이 우리를 살리고 국가를 살리는 큰 기운이 될 것이다. 남한산성과 남한행궁의 문을 열자마자 많은 인파가 몰리는 연유는 이 남한산성의 기운을 받아 자손만대로 번영과 생동감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남한산성에 오르면 미래가 보인다’는 초등학생의 작문처럼 우리 미래의 큰 꿈을 남한산성에 올라 꾸어보자.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온 남한산성과 남한행궁의 높은 기운을 받아 우리 모두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장으로 영원히 발전시키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 속의 산성으로 우뚝 솟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보삼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한국박물관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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