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배려라는 청량제

며칠 전 어느 식당 옆 테이블에 친구들로 보이는 일행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으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잠시 뒤 일행 중 하나가 갑자기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심한 상소리와 함께. 이에 질세라 맞은 편에 있던 사람 역시 “야, 임마! 니가 뭐 잘났어?” 하며 되받아치며 주먹다짐을 마다하지 않았다.

부처의 가르침 중에 무재칠시(無財七施) 라는 것이 있다. 재물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7가지라는 뜻이다. 필자는 그 중 마지막 ‘찰시(察施)’라는 가르침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굳이 묻지 않고 상대의 형편과 사정이나 속을 헤아려 알아서 베풀라고 하는 말씀, 이 얼마나 드높은 가르침인가!

만일 식당의 그 일행들이 찰시라는 교훈을 알았더라면, 아니 찰시의 일종이랄 수 있는 배려하는 마음만 있었더라도 그 날의 볼썽사나운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서로가 서로에게 약점을 들먹이며 욕설을 해대는 일은 애시당초 없었을 것이다.

이 쯤에서 생각나는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 한 부지런한 물 지게꾼이 있었다. 그는 두 개의 항아리를 양 어깨에 메고 물을 날랐다. 그런데 강가에서 물을 떠 집까지 오면 늘 한쪽 항아리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는 물이 반밖에 차지 않았다. 항상 가득 찬 물을 길어왔던 항아리는 늘 의기양양했고 자부심이 넘쳐났다. 반면에 낡고 금이 간 항아리는 언제나 반밖에 물을 나르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이 간 항아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미안함에 자신을 바꿔달라고 지게꾼에게 요청했다. 이에 지게꾼은 금이 간 항아리를 따뜻하게 위로해주며 말했다. “항아리야, 강에서 집까지 오는 길목을 뒤돌아 보거라. 네가 메달린 쪽으로는 예쁜 꽃이며 풀 등이 자라고 있지만 반대 쪽은 풀 한 포기 없지 않느냐? 그동안 너는 너를 희생해 식물들에게 사랑과 생명을 나누어준 거란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흠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 흠은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게꾼의 예에서 보듯 보듬고 감싸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흠은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자칫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기 쉽다. 이럴 때 일수록 사람을 대함에 있어 따뜻한 마음(심시), 위로·격려·칭찬의 말(언시)과 같은 청량제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러면 모두가 화목하고 즐거워 사람이 반가운, 정조대왕의 ‘인인화락(人人和樂)’ 정신은 절로 이뤄질 것이다.

염 상 덕 수원문화원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