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돌아가신 지 오래된 아버지를 보았다. 흰 남방 소매를 걷어 올리고 닭에게 모이를 주고 계셨다. 나는 여전히 철부지 소년으로 옆에서 열심히 부리로 모이를 쪼는 닭들을 보다가 “아버지”하고 다가서니 아무 말씀 안하시고 밤나무가 있는 재래식 뒷간을 지나 먼 길을 가신다.
꿈에서 깨어나니 아침 5시가 조금 넘었다. 요즘 부쩍 야근이다 각종 모임이며 행사에 참석하다 보니 입맛도 없고 공복이면 속이 아프다. 아내는 입에서 냄새도 심하다고 빨리 병원에 가보라 하지만 여전히 참을 만하여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왜 내시경 검사받으라고 하는데 속 썩이세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괜찮다. 아빠는 이젠 할아버지보다도 훨씬 오래 살았고 너도 시집보내고 또 병철이도 자리잡았으니, 이젠 살만큼 살았다.” “아빠, 미워~ 아빠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 이 무슨 부녀지간의 몹쓸 대화인가?
하는 수 없이 온가족의 성화에 떠밀려 대학병원엘 갔더니 내시경 예약이 한참 밀렸단다. 다음 날 가끔 다니는 동네 내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아파도 2분 정도만 참으시면 됩니다.” 2분이라~ 주기도문을 외울까? 아니면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생각할까 하는데 의사의 지시가 떨어지고 참기 힘든 고통이 찾아왔다. 낯선 이물질의 침입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세상을 좀 더 착하게 살 수도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왜 여기까지 왔는지 그리고 이렇게 추한 모습으로 낯선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몸속 구석구석까지를 드러내어 놓아야 되는지 못난 자신이 후회가 된다.
살면서 속상하는 일들도 참 많았다. 하지만 속상하지 않아도 될 것들도 많았다. 꼭 가져야 할 것들도 있었지만 없어도 무방한 것들도 더 많았다. 불필요한 욕심, 부끄러운 질투와 증오, 그리고 가증스럽게 남을 속여 온 위선 등 온갖 치부들이 다 드러나는 것 같아 부끄럽다. “ 잘 참으시네요. 상태가 좀 그래서 조직 2군데를 떼어냈습니다. 결과는 10일 후에 나오는데 크게 걱정은 마십시오.”
처방전과 주의사항을 건성으로 들은 뒤 병원을 나오는데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드디어 하셨다며. 잘했어요. 근데 수면내시경이야, 그냥 했어요?” 사실 나는 수면내시경이 있는 줄도 몰랐다. 워낙 남의 말을 잘 듣는 모범생이라 의사의 지시대로 순순히 침대에 누웠으니까….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하늘이 저렇게 푸르고 또 산과 들은 얼마나 건강함으로 세상을 끌어안는가? 욕심을 버리고 좀 더 착하게 살아야 할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다.
김남윤 한국폴리텍Ⅱ대학 남인천캠퍼스 교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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