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올림픽과 스포츠정신

스포츠정신이라는 게 있다. 승패나 결과를 떠나 최선을 다하는 것, 나의 승리를 위해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것,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것이 바로 스포츠정신이다. 런던올림픽이 스포츠정신을 무색케 하는 누더기올림픽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거의 모든 선수들이 페어플레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심판진과 대회 운영진이 선수들의 땀과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어서다. 오죽하면 ‘어글리(추한) 올림픽’이라는 말이 나올까.

어글리 올림픽의 폐해가 하필이면 우리에게로 몰리기도 했다. 박태환, 신아람, 조준호 등의 어이없는 판정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국민이면 누구랄 것 없이 흥분하고 분노했다. 다행이 우리의 선수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악조건 속에서도 잇따라 낭보가 날아든다. 새삼 선수들의 열정에 박수를 쳐줄 일이다.

한편, 우리 역시 어글리 올림픽에 일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선수들이야 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뒷전의 대한체육회와 언론, 특정 종목 해설위원의 부적절한 행태와 언행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승부정신 무색케하는 ‘어글리 올림픽’

잠시, 축구 예선전으로 돌아가 보자. 가봉과 경기할 때다. 해설자로 나선 허정무씨의 해설이 종내 귀에 거슬렸다. 대표선수와 대표팀 감독까지 맡았던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가봉 선수가 부상으로 실려 나갈 때마다 “좋아요, 잘 된 일이에요, 잘 됐어요”를 반복하는 게 아닌가. 실수인가 싶었지만 후반전에 벌어진 똑같은 상황에서도 “좋아요, 잘 됐어요”를 반복하는 걸 보면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뭐가 좋고, 뭐가 잘됐다는 건가.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날 경기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딸아이가 함께 보고 있었다.

대한체육회의 행태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멈춰선 1초’로 커다란 상처를 입은 신아람 선수를 다독여야 할 체육회의 행태가 한심하다. 선수는 국제펜싱연맹(FIE)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바랐지만, 체육회가 받아들인 건 사과가 아니라 생뚱맞은 특별상이었다. 선수의 의중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꼼수를 내놓은 거였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감정 섞인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감히 한국이…’ 치명적 오심 이유 있었다”와 같은 기사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를 얕잡아 보는 서구국가들의 음모라거나, 자기들은 불황을 겪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치고 올라오는 게 배가 아파서 그렇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다.

혹자는 올림픽을 총성 없는 전쟁이라 말한다. 전쟁을 대신한 대리전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건가. 다른 관점도 있다. 올림픽은 싸움이나 전쟁이기 전에 인간본연의 도전정신과 열정을 극대화하는 경연의 장이며 축제이기도 한 것이다.

왜곡된 스포츠정신 바로잡아야

왜곡된 스포츠정신, 일그러진 올림픽정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잘못은 정확하게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되 사람을 미워하거나 남의 불행을 즐기고, 요행을 바라는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올림픽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 열정, 도전정신을 키우는 교육의 장이며 실천의 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옳을 수 있듯 상대도 옳을 수 있다. 우리가 승리를 갈망하는 것처럼 상대도 승리를 갈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추한 올림픽을 교훈 삼아 다시금 스포츠정신의 중요성을 깨우쳐야 한다. 올림픽을 통해 우리의 아이들이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의식을 고양하는 것도 나쁠 건 없지만 그에 앞서 진정한 스포츠정신을 이해하고,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권의식을 깨우치기를 바란다.

최준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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