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 어르신께서 하신 말씀 중 ‘하루라도 먼저 세상 태어난 사람에게는 배울 것이 꼭 하나 있다. 절대 무시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뚜렷이 기억이 난다. 뭔가를 먼저 경험한 사람은 그러지 못한 사람보다 분명 그 만큼의 앞서가는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다가 내가 꼭 가고 싶은 아니 알고 싶은 곳에서 미리 자리를 잡은 사람에게서 얻고자 하는 경험의 편린은 더 절실한 것인지 모른다.
2000년 덴마크에서는 책이 아닌 사람 책을 빌려주는 리빙 라이브러리가 태동을 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서로 잘 알지 못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을 줄이자는 의도로 기획된 것이다.
사실 보통 초기에는 흔히들 말하는 인생의 멘토가 될 만한 분들이 사람 책이 되어 소통에 참여하지만 활성화된 곳에서는 동성애자나 미혼모, 노숙자 등도 사람 책이 된다고 한다.
서울숲 리빙 라이브러리는 올해 3회째를 진행하면서 청소년들이 고민하는 미래와 진로, 아울러 멋진 어른으로 자라기 위한 방법을 환경운동가, 사서, 중환자실 간호사, 대기업 부장님, 소설가, 사회적 기업 대표들과 대화를 나누며 활동을 하였다. 서울 자치구에서도 경쟁적으로 리빙 라이브러리를 도입하여 성황리에 진행중이다.
국내 어느 도서관에서 실시한 리빙 라이브러리의 사람책 제목을 살펴보면 흥미로움이 더해질 것이다. ‘죽음을 준비한다, 웰 다잉(well-dying)’, ‘나는 지식 유목민이다’, ‘가난해도 나는 아빠다: 영재를 만든 책 배달부’, ‘당신을 초대합니다, 따뜻한 나눔의 세계로: 굿네이버스 자원활동가’, ‘사이(間)에서 숨쉬다’, ‘항공우주 과학자의 NASA 이야기’, ‘음악, 이 뭐꼬?: 음악과 건강’, ‘미칠려면 미쳐라, 미치면 미치리라’, ‘독일에서의 20년’, ‘꿈은 준비된 사람만이’, ‘대한민국 삼수생: 삼수생 탈출기’, ‘과학담당기자의 엉뚱한 이야기’, ‘나와 우주의 비현실적 만남’, ‘인생은 도전과 희생이다’, ‘길치 모자의 천방지축 유럽여행’ 등이 그것이다. 청소년기에 한번쯤 사람 책으로 만났으면 하는 주제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순수하게 책으로만 접근하면 다소 딱딱할 수 있는 도서관의 모습이 이렇게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새로운 시도로 책은 이제 자주 접해야 하는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책 읽는 도시 인천에서도 조만간 리빙 라이브러리 즉, 사람 책으로 인천이 좀 더 행복해질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된다.
배창섭 인천 율목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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