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문명의 그늘

지난 휴일 저녁 무얼 잘못 먹었는지 밤새 배가 아파 쩔쩔매다 늦잠을 잤다. 월요일이면 통상 이른 3시에는 일어나 3시 반~4시에는 춘천을 출발해 인천에 오면 6시쯤 되는데 그날은 4시에 눈을 떴다.

조금만 늦으면 경인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기 때문에 서둘러 옷을 입고 짐을 챙겨 나왔다. 시동을 걸고 네비게이션을 입력한다. 네비게이션은 길도 안내하지만 선잠을 자고 떠나는 나그네의 졸음을 깨우는데도 일조를 하니 참 편한 세상이다.

네비게이션 덕분에 4년 넘게 해마다 20여개 사단을 돌며 전역예정군인들에 대한 사회적응교육을 무사히 마쳤고, 또 모르는 길에 대한 두려움도 떨칠 수 있었으니 고맙기 짝이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강촌을 지나니 인천까지는 120㎞ 남짓하다. 문득 짐을 잘 챙겨왔나 점검해본다. 지갑? 안주머니에 있다. 아파트 열쇠? 차 키에 함께 달려 있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휴대폰? 없다. 어제 배터리를 충전한다고 아들 방에 놓아두고 그냥 온 것이다. 돌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순간적으로 따져본다. 집까지 24㎞이니 왕복 한시간이면 가능하겠지만 그러다가 교통체증에 묶일 것이 십상이다.

견뎌보기로 마음을 정하고도 가는 내내 휴대폰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다. 사실 휴대폰 없이도 내 인생의 80% 이상을 살았다. 휴대폰은 고사하고 가난한 시골에서 자란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전화사용법 조차 잘 몰랐다. 그러니 일주일 없다고 무엇이 대수랴.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하루에 보통 문자까지 10~20통 가까운 통화를 하고 더군다나 거기에 32G짜리 USB까지 달려 있어 온갖 강의자료(동영상포함)며 공인인증서까지 들어 있는데. 심란하다. 마치 신체의 일부라도 놓고 온 것처럼 허전하고 불안하다.

우리나라는 휴대폰 사용자가 국민의 숫자보다 많은 5천만대가 넘는다는데 과연 전철이나 심지어는 어느 곳을 가든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통해 게임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열중인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세상은 빠르고 많은 정보나 지식을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과연 그러한 문명의 이기들의 발달로 우리가 편하기만 하고 행복한 걸까?

공중전화 부스도 사라진지 오래됐고 이제는 가족 모두가 휴대폰을 사용하는 시대라 가정집의 전화기도 무용지물인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엽서를 쓰고 또 형님께 용돈을 좀 보내달라고 몇 번을 망설이다 쓰던 편지, 춘천에서 살면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를 만나 연애를 하며 쉬는 시간에 동료들 몰래 걸던 전화, 그립다. 그리고 되돌아 보면 그때가 더 행복했던 시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김 남 윤 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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