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당신의 등을 보여주세요

며칠 전, 한 고등학생이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이 놈의 세상은 왜 이 모양이지?’ 가슴이 시리고 코 끝이 찡했지요. 중학교 때부터 따돌림을 당한 아이였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따돌림 당한 걸 알던 친구 녀석들이 그 소문을 퍼트린 모양이었습니다. 그 후 다시 또 따돌림과 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죽은 아이의 부모가 폭행에 가담한 학생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어봤답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그냥 때렸어요.’ 부모는 기가 막혀서 그 학생 앞에서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너무 어이없고 속상한 일입니다. 아이들의 폭행과 자살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열심히 뛰고 있지만 결국 역부족이거나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겠지요.

요즘 어느 학교 앞엘 가나 학교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의지의 플래카드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지만 있는 게 아닐까요? 어느 어둔 골목에서 혹은 학교 건물 으슥한 곳, 때론 동네 PC방에서 학교나 정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를 괴롭히고 또 누군가는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학교폭력과 아이들의 자살이 사라지지 않는 건 정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지 않을까요?

아이들의 죽음은 어른들의 잘못

아무리 변명을 하려고 해도 아이들의 죽음은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못한, 생명이 소중한 걸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고통을 견디면 성숙하게 된다는 걸 알려주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문제를 아이들에게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아이들의 문제는 늘 어른들에게 있으니까요. 그래서 글쟁이다운 발상을 해봤습니다.

아이들의 손에 시집을 안겨주고 소설책을 건네주세요. 졸음이나 유도하는, 생명은 소중하다는 틀에 박힌 교육이나 강연을 할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시간을 주세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에 가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그 나이에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걸 가르쳐주세요.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세요.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라니까요. 아버지가 세상을 사랑하면 아이도 세상을 사랑하게 되고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면 아이도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겁니다. 어른이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또래 아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들이 바르면 아이들은 또래에게 함부로 하지 않을 겁니다.

어느 날 여섯 살 밖에 먹지 않은 아들 녀석과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학생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뉴스를 보고 아들 녀석이 자살이 뭐냐고 묻더군요. 자기 자신을 죽이는 끔찍한 일이라는 설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뉴스가 만연해 있는 세상이니 아이들의 눈을 가릴 수는 없을 겁니다.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쉽게 자살해버리는 세상에 대해 설명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죽음이 부모에게 어떤 고통인지도 설명할 수 없었지요. 하지만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대답해주었지요. 그러자 아들 녀석이 슬프겠다고 대꾸하더군요.

마음과 실천으로 모범 보이자

그래요, 자살은 슬픈 일입니다. 이제라도 어른들이 그 슬픔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제도로서가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고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과 실천으로 아이들에게 그 등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훗날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보게 될 하늘이 얼마나 파란지, 비를 몰고 오는 적란운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햇살이 채워진 시골길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가슴을 저리며 찾아오는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배울 수 있게 당신의 등을 보여주세요. 아이들의 손에 교과서가 아닌 책을 들려주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여행을 떠나주세요. 그럼 우리의 아이들이 세상과 단절하는 끔직한 거리와는 멀어지지 않을까요.

전민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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