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베 소통대회 2012’ 주한 베트남 이주가정 고향방문기 본보 주최, 수기공모전 최우수상 친정나들이 행운
경기일보는 2012년 한국-베트남 양국 간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10~12월 ‘한-베 소통대회 2012’를 개최했다.
특히 주한 베트남 이주가정 수기를 공모, 15가정을 선발해 지난 10월 21일 한국 전통혼례식을 올려주고 3명에게는 고국방문 왕복항공권을 전달했다.
그 행운의 주인공 중 한 명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레티탄두엔씨(24·충남 홍성군 갈산면). 2006년 한국으로 시집와 농사일을 하면서도 검정고시로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홍성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그는 바쁜 한국생활을 잠시 접고 남편 김형훈씨(46)와 아들 융성(6), 딸 혜민(4), 그리고 시아버지 김기갑씨(73)와 함께 그리운 친정집을 방문했다.
19살에 한국으로 시집와…언어·문화 차이·맏며느리 역할까지 삼중고
12월 19일 오전 6시 30분,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난 레티탄두엔씨는 3년 만에 가는 친정나들이에 상기된 모습이었다. 치약, 김, 미역 등 식구들에게 줄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그는 “엄마, 아빠가 제일 보고 싶다. 빨리 만났으면 좋겠다”며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레티탄두엔은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시집왔다. TV드라마를 보고 한국 사람이 너무 멋있어 보였고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부모님은 베트남 신부들이 맞고 사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가지 말라고 말렸다. 레티탄두엔은 “싸우지 않는 부부가 어디 있냐, 그리고 멀리 있든 가까이에 있든 잘만 살면 된다”며 당차게 부모를 설득했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오니 현실은 드라마 같지만은 않았다. 어려운 집안 살림 때문에 초등학교를 2년 밖에 다니지 못하고 농사를 지으며 유년기를 보낸 그녀는 한국에 와서도 여전히 농사를 지어야 했다.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5남매 중 장남과 결혼해 1년에 제사를 5번 지내는 맏며느리 역할까지 맡았다. 결혼 4개월 만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요리 배우기도 쉽지 않았다. 남편과의 문화차이는 물론이고 세대차이까지 느끼며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초·중학교 검정고시로 졸업…억척아줌마·불굴의 며느리로 대변신
그런 한국생활에 전환점이 된 사건은 우연히 찾아왔다.
둘째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돼 어느 날 TV를 보다 70세가 넘은 할머니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일흔이 넘은 할머니도 저렇게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는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충격을 받은 그녀는 공부를 다시 시작해 보자고 결심한다.
그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며 공부를 다시 해보길 바라던 남편도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낮에는 농사를 지으며 아이들을 키우고 밤에는 책을 붙들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여기에 교재를 사주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열심히 가르쳐주는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더해져 레티탄두엔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모두 검정고시로 졸업할 수 있었다.
레티탄두엔은 현재 홍성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며칠 전에는 1학년 과정을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가기 위한 시험도 봤다.
가난 때문에 공부를 포기했던 딸이 이제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말하고 싶은 마음에 비행기 안에서 레티탄두엔의 가슴은 더욱 쿵쾅거렸다.
가족들과 눈물의 상봉, “이대로만 산다면 더 바랄 게 없다”
5시간 비행 끝에 호치민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도로를 꽉 메운 오토바이 행렬이 베트남에 왔음을 실감케 했다.
레티탄두엔의 친정은 호치민에서도 차로 3시간 넘게 걸리는 롱안이라는 곳이다. 길이 새로 나는 바람에 친정집 방향을 찾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차가 멈춘 곳은 메콩강의 한 지류. 이 곳을 건너야만 레티탄두엔의 집이 나온다. 어느 새 해가 저물어 어둑해진 가운데 레티탄두엔의 오빠가 부서져가는 쪽배의 노를 저으며 마중을 나왔다. 오빠를 보고 “조심해”라고 말한 그녀는 “우리 오빤데 한국말로 말해버렸다”며 겸연쩍게 웃는다.
배를 타고 수심 10m, 폭 30m의 작은 강을 건너자 18살 여동생이 먼저 달려 나와 반긴다. 언니를 보자 눈물이 글썽해진 여동생의 얼굴을 레티탄두엔이 가만히 어루만졌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두 팔을 벌리며 “왜 이렇게 늦었어, 걱정했잖아”라며 레티탄두엔을 끌어안았다.
이어 사돈 간의 첫 만남. 시아버지 김기갑씨는 “딸을 잘 키워줘서 정말 감사하다. 덕분에 가정이 평안하다”면서 “모든 일을 잘 하니 걱정하지 마시라. 내 마음에 쏙 든다”며 며느리를 추켜세웠다.
그 말을 전해들은 부모는 안심이 된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레티탄두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머니 팜티김로안은 “멀리서 사니까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는데 아이들도 잘 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며 “학교도 다니고 행복하게 살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 이대로만 산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레티탄두엔 가족의 방문으로 친정집은 손님맞이에 활기를 띠었다. 부엌에서는 음식 준비가 한창이고 레티탄두엔의 외가와 친가, 사돈집 식구들까지 모두 모여 북적였다.
친척들은 레티탄두엔의 아들 융성이를 둘러싸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등 베트남어 가르치기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융성이가 베트남어를 한 마디씩 따라할 때마다 모두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이번엔 반대로 한국말을 가르쳐 줄 시간. 레티탄두엔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를 또박또박 발음하자 이들은 더듬거리며 말을 따라하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음이 터진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더니 베트남에도 손님이 오면 닭을 삶아 내 오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온 가족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삶은 닭고기를 나눠먹으며 밤이 깊어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무원시험 도전 계획
이틀 뒤 레티탄두엔의 가족들은 메콩강 관광을 나섰다. 배를 타고 강을 유람하고 유니콘섬으로 들어가 맛있는 음식과 열대과일을 먹으며 가족들은 내내 웃음꽃을 피웠다. 융성이는 자기 또래인 외사촌과 말은 안 통해도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어느 새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혜민이의 재롱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도 손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편 김형훈씨는 “베트남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한다는 걸 여기 와서 알았다”며 “아내가 말도 안 통하는 한국에서 대화도 못 하고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겠구나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처가에도 신경을 더 많이 쓰고 아내에게 더 잘해줄 것”이라고 덧붙이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레티탄두엔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정말 행복하다”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줘 감사드린다”고 환하게 웃었다.
낯선 나라에 시집와 살림과 육아, 농사일까지 도맡아 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도전하고, 또 야무지게 그 꿈을 이뤄내는 레티탄두엔.
레티탄두엔은 새해에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무원 시험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복지 분야나 보건소에서 일하는 게 꿈이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고향집에서 연말을 함께 보내며 행복을 충전했으니 새해 소망도 행복한 기운을 얻어 꼭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글 _ 베트남 호치민ㆍ구예리 기자 yell@kyeonggi.com 사진 _ 장용준 기자 jy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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