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기리에 방송된 연속극에서 “사장을 잡아야지! 피라미는 잡아서 뭐 하냐?”라는 대화가 나온다.
의료보험수가를 결정하는 약가협상 대상에서 청구액이 수백억원대가 되고 약품비 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대량 사용품목들을 제외하고 있다는 비판기사에 사용한 비유도 ‘큰 물고기는 건드리지 못하고 피라미만 잡는다’였다. 어느 정치인은 피라미가 월척이 될 수 있느냐면서 겸손을 떨었다는 얘기도 있다.
여기에서 피라미는 영향력이 없거나 숫자는 많지만 조무래기 수준, 또는 경험이 별로 없어 돋보이지 않거나 신뢰를 줄 수 없는 경우를 뜻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들은 피라미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송사리와 같이 피라미를 잔챙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가 우연히 불거지라고도 부르는 수컷의 실물을 보고 ‘피라미는 피래미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피라미 크기는 10㎝내지 15㎝ 정도로 그렇게 왜소하지 않다. 수컷은 평소 은백색이지만 산란기가 되면 등쪽은 청록색이 되며 주둥이와 머리 아래쪽은 적갈색, 지느러미는 붉은 빛을 띤 황색이 나타나며 혼인색(婚姻色)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도시 생태하천으로 다시 살아 난 안양시 학의천에는 피라미가 정말 많이 서식한다. 도심 하천에 피라미가 찾아왔다고 시민들이 반가워하는 것은 수질이 그만큼 좋아졌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피라미는 최소한 2, 3급수 정도에서 서식하지만 메기나 잉어는 그보다 수질이 나쁜 4, 5급수에서 살고 있다.
내가 만난 어느 시골 할아버지가 “동네 냇가에 요즘 피라미는 없고 잉어가 잡힌다”며 걱정하는 그 이유도 평범하던 농촌에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하천이 더러워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만 아니라 농촌마을에서도 피라미는 귀중한 대우를 받는다. 울진군의 굴구지라는 오지마을의 왕피천에서는 매년 6월에 피라미축제가 열리는데, 인기가 대단하다. 피라미가 동네를 유명하게 만든 경우다.
조선시대 백과사전이라는 재물보에 피라미를 백찬(白餐), 또는 찬어(餐魚)라고 기록한 걸 보면 옛날에도 매우 요긴한 먹거리로 인정받았음을 알 수 있다.
습성도 매우 착하다. 보잘 것 없다는 피라미가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갈겨니라는 고기와 서식지를 공유하는 곳에서는 상대방의 먹이인 수서곤충을 잡아먹지 않고 양보한다.
‘개천에서 용커녕 피라미도 나오지 못한다’라는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피라미의 ‘더불어 삶’이 그래서 돋보인다. 피라미를 우습게 보지 말자!
박 남 수 굴포천시민모임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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