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치매를 통해 바라보는 인간의 삶

팔순의 노모가 치매를 앓고 있다. 7~8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다 증상이 심해져 안산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셨다. 아버지가 매일 운동삼아 걸으실만한 위치에 있는 곳이라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지난 5일이 어머니 생신이었다. 다른 형제들은 어머니를 찾아뵈었으나 필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못 찾아 뵈었다. 공연도 끝났으니 지금이라도 찾아뵈라는 집사람과 딸들의 성화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식들이 모이는 것을 누구보다도 좋아하셨던 분이라 매년 어머니 생신은 형제들이 모두 모이는 집안의 주요 행사였다. 그런 어머니의 2013년 생신은 맛있는 음식도 선물도 없이 너무나 초라하게 지나갔다. 상황에 대한 판단능력도 없고, 누가 와도 못 알아본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위안을 삼고 가볍게 생각했던 필자의 태도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일제시대에 태어나셨고 6ㆍ25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열심히 자식들을 키우며 치열하게 사셨던 분이다. 그 세대의 숙명처럼 고생을 몸으로 받아들이시면서 자식들에게 헌신하셨던 분이셨기에 자식들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하신 분이셨다.

이제 자식들의 효도를 받으면서 행복한 노년을 보내셔야 할 시점에서 모든 기억을 잃으셨으니 치매는 인간에게 참으로 가혹한 질병이다. 노년기에 접어든 인간에게 치매가 주는 공포가 얼마나 큰 것인가는 치매와 관련된 보험상품으로 넘쳐나는 홈쇼핑 광고만 봐도 짐작이 간다.

 

삶의 추억을 잃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치매를 암보다 무섭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은 이유는 암환자는 마지막까지 자식들의 효도를 받으면서 생을 마감할 수 있지만, 치매환자는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생을 마감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치매는 정상이던 지능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기능이 저하되어 나타나는 증상으로 현대의학으로도 치료가 힘들다고 한다. 30대 후반이면 누구나 시작된다는 치매는 기억력, 이해력, 계산력의 상실에 이어 시력과 청력, 미각의 상실에까지 이르게 된다. 원인으로는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 뇌의 노화 등을 꼽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우울증이 치매의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어머니 세대가 공통으로 느꼈을 엄청난 삶의 스트레스가 치매의 원인은 아니었을까? 가족에게 헌신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심한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그분들께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식들의 사랑과 관심이 아닐까? 찾아온 자식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지독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이 기 복 광주시연극협회장 청석 에듀씨어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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