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살기 좋은 하나의 계절만 존재하고, 인간이 소비해야할 곡물과 생산될 곡물의 양이 완전히 맞춰져 있다.
폭우와 폭설 혹은 과다한 일조량은 있을 수 없다. 아이가 태어나면 나이에 맞춰 허용되는 것들만을 행해야한다. 머리에 리본을 달고 다녀야할 나이, 자켓을 입어야할 나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나이가 정해져 있다. 그리고 12살이면 해야 할 임무(직업)가 정해진다. 심지어 아이를 낳아야할 임산부의 역할까지도 임무로 배정된다. 그리고 완전한 공동체사회를 위해 기능이 쇠약해진 인간은 임무해제를 받게 된다. 즉 의도된 죽임이 행해진다.
이런 완전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한사람에게만 부여되는 중요한 임무가 있다. 기억보유이자 전달을 하는 역할이다. 기억을 보유한자가 기억보유자로 임명된 12살짜리 아이에게 기억을 전달해준다. 완전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고자 하는 것이다. 변화없는 세상에 약간의 변화는 대단한 충격을 유발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찾아 부작용 없는 현명한 해결책을 찾기 위함이다. 기억보유자 즉 전달자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일어나는 모든 희노애락을 느끼고 있으므로 일반인들과 격리되어 생활하게 된다. 완전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전인격적 존재인 셈이다.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담당하는 인간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새로운 행성 개발을 위해 투입된다. 필요한 지식과 감정이 이식되어 있어 인간 못지않은 능력을 갖는다. 그들은 주어진 임무에 맞게 제작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에 등장하는 판매되는 인간 ‘리플리컨트’다.
이들의 약점은 생존기간, 즉 유통기간이 4년으로 정해져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4명의 리플리컨트는 생명연장을 위해서 지구로 잠입한다.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리플리컨트를 색출하기 위해 주인공이 활약하게 되는데 그의 방법은 200개정도의 기억과 감정에 대한 질문으로 홍채반응을 살펴 이식된 것임을 알아채는 것이다.
‘기억전달자’는 청소년들을 위한 성장 소설이라고 한다.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겪게 될 여러 가지 일들을 은유로 나타내는 책이라고 하지만, 유독 나의 기억에 남는 것은 완전한 사회를 유지하려는 불완전한 인간이 기대는 ‘불완전한 사회를 살다간 인간의 기억’에 있었다.
SF의 전형이라고 불리게 된 ‘블레이드 러너’ 또한 인간의 공유된 감성,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블레이드러너는 한 여성 리플리컨트를 데리고 탈출한다. 그러나 그 또한 리플리컨트일지 모른다는 암시를 남기고. 기억전달자는 임무해제 결정을 받은 아기를 데리고 조절된 완벽한 사회를 탈출한다.
불안정성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발생하는 당연한 현상이다. 인간사 사실들이 모여 한켠에 역사라는 이름으로 강조되는 것은 기억되지 않는 역사의 반복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기억에 대한 상처를 헤집어 발생하는 불안정성과 무질서 뒤에 숨겨진 통치의 테크닉일 것이다. 덧칠해지는 변질된 기억의 사실 속에 놓여있는 핵심은 기억의 공유자들로 인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민병은 ㈔한국문화의집협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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