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교정시설과 사회

예로부터 형벌의 무게는 사회와의 이격(離隔), 즉 격리의 정도와 비례하여 터를 잡고 있었다. 죄가 중할수록 수천리 떨어진 절해고도로 귀향을 보내 뼈저린 고독을 감내하게 하는, 이른바 불가근(不可近), 불가촉(不可觸)의 형벌관행이 지속되어 왔음을 행형사를 통해 읽어낼 수 있다. 차단과 격리를 방편으로 처벌적 응보가 실현되었던 고전적 형벌사조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그러나 장구한 시간이 흘러 소위 교정.교화를 표방하는 오늘날의 행형현실에서도 범죄자에 대한 불관용-격리와 추방의 사회심리는 견고하여 악인을 위해 괴로워해야 할 단 한 치의 여유도 쉽사리 허용하지 않아왔다.

그래서 교정시설들은 애초에 인적없는 구석을 찾아 숨어들었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길 하나 제대로 없는 궁벽한 산촌의 논두렁이나 산기슭을 비집고 들어 터를 잡으며 스스로 하나씩의 섬처럼 존재하길 마다하지 않았다. 멀리로 더 멀리로의 격리만이 형벌의 역량이요 법이 주는 믿음이자 위안으로 가슴을 쓸어 내리는 사회일반의 욕구에 불평없이 순응하며 오지에 자리를 잡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교정시설로 인해 큰길이 나자 도시의 광역화와 더불어 그 길은 마치 연육교처럼 사람들을 교정의 섬으로 불러 모았고 십수년의 세월이 지나자 교정시설은 새로운 이주·정착민들의 아파트며 빌딩들에 포위되고 말아버린다. 그리고는 선량한 사람들의 삶의 터 한 가운데 교도소가 위치하여 집값을 떨어뜨리고 도시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난에 휩싸여 또다시 말썽꾸러기로 전락해 버리는 수모를 격게 된다.

최근에 재건축 문제로 논란을 빗고 있는 안양교도소도 이러한 경우에 다름아니다. 안양교도소는 그 시설이 노후하여 재건축을 하되 그 기능을 전환하여 의료교도소와 안양구치소를 주변경관에 적합하게 친환경적으로 건립하도록 계획되었고, 지역주민, 국회의원, 전임시장 모두가 합의를 이루었던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시장이 새로 취임한 후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행형은 수형자에 대한 격리의 과학화, 처우의 개별과, 보호의 사회화를 통해 그들을 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 복귀시킴에 그 의의를 두고 있다.

따라서 출소 후의 원만한 사회정착을 위한 기능·기술력의 배양을 위한 다양한 직업훈련을 실시하며, 이러한 직업훈련은 사회관련기업과의 연계·협조가 있을 때 효율성이 높아지는 바 사회접근성을 필요로 한다. 아울러 심성순화를 위한 각종 교화프로그램 또한 종교인, 학자 등 사회명망가들의 헌신과 봉사로 좋은 성과를 거두어 가고 있는 바 이 역시 교정시설이 도시근교에 위치할 때 인적 자원의 유치에 더욱 유리하다 할 것이다.

한편, 관점을 달리하면 교정시설을 막연히 불편한 눈으로만 지켜 볼 일도 아니다. 우선 교정시설을 위요한 드넓은 녹지대의 보존은 도시의 대기환경정화에 일조한다. 또한 교정시설에 구금된 수형자들은 비록 그 죄는 미우나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인근에 거주한다. 가족 한 사람의 구금은 전 가족의 마음을 구금해 버림을 이해할 수 있을 터, 교정시설이 원격지에 떨어져 있을 경우 생계를 돌보랴 그 멀리에 까지 면회를 다니랴 가족들이 치루어야 할 부가적 고통쯤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회 있는 곳에 범죄는 따르게 되어 있는 법, 우리 집 앞 쓰레기 우리가 쓸고 치우듯 우리이웃들의 실수와 상처 또한 우리가 토닥이고 보듬어 갈 때 세상이 더욱 따뜻하고 밝아지지 아니할까.

교정관계자들이 보다 많은 땀과 노력의 시간을 기울여 사회일반의 이성적 판을 끌어와야 하겠다.

 

이태희 전 법무부 교정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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