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 어르신 깔끔하게… 14년째 행복한 ‘가위손 천사’

‘어르신 미용봉사’ 양평 용문면 광탄리 한용재씨

“머리칼은 물론, 지친 심신까지 ‘훤하게’ 다듬어 드리겠습니다.”

양평군청 앞에서 강원도 홍천으로 이어지는 6번 국도를 30분쯤 달려 용문면 광탄리에 도착하면 만발한 코스모스 꽃들이 먼저 아는 체를 한다.

시골 어르신들이 허리춤에서 쌈지 담배를 꺼내 물고 앉아 시외버스를 기다리는 풍경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몇 걸음 옮겨 신작로를 건너면 만나는 아담한 이발소에서 올해로 14년째 머리를 깎아 주는 한용재 사장(55).

지역에선 늘 웃음을 달고 사는 그를 ‘가위 든 천사’라고 부른다.

홀몸 어르신이 계시는 곳이면 어디든 승용차를 몰고 강도 건너고, 산도 넘어 달려가 가게로 모셔와 깔끔하게 단장해 드린 뒤 댁으로 모셔다 드리기 때문이다.

‘이발을 하면 1주일이 행복하다’는 농담처럼, 연세가 높으신 분들에겐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는 게 유일한 낙이기도 하다.

흰 가운과 가위와 빗만 없으면 영락없는 이웃집 아저씨이지만,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가지런한 치아와 짧은 스포츠형 머리 앞에선 세월도 멈춘 듯 영원한 청년이다.

강원도 양구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이곳으로 옮겨온 그가 가위를 든 건 순전히 호구지책 때문이었다.

고교를 졸업하고 해병대에서 복무했는데, 당시 이발병이 제대하면서 동료의 머리를 담당하게 됐다.

제대하고 나서 서울에서 20여 년 직장생활을 하다 IMF를 맞았다.

다니던 회사는 부도가 나고, 그래서 택한 게 이용기술이었다.

서울 서대문의 한 기술학교에서 1년여 동안 치열하게 기술을 배웠다.

당시, 탑골공원 등지의 노숙인들의 머리를 하루에 많게는 10명 이상 다듬어줬다.

“이발소를 차렸는데, 3년 동안은 손님이 없어 고전했죠. 해병대 생활도 했는데, 여기에서 포기할 수 없다는 각오로 까짓것 뭐 도전해보자고 다짐했죠.”

그리고 입소문이 나면서 단골들이 갈수록 늘었다. 그는 손님이 가게로 들어올 때마다 그 손님 집의 숟가락 숫자는 물론 경조사까지 꿰뚫고 있다.

고객들은 그냥 한 사장에게 편하게 머리만 맡기고 꿈나라만 다녀오면 그만이다.

3년 전부터는 외아들 남수씨(29)도 면허증을 따고 아버지 가게에 가세하고 있다.

그는 오늘도 어느 어르신이 손수 써주신 주자의 가르침인 ‘간이무오(簡而無傲)’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가위로 행복과 사랑을 미용 중이다.

양평=허행윤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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