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에서 정당이 사라져버렸다. 제대로 살아있는 정당이 없다. 새누리당은 대통령 권력 속에 박혀있고, 민주당은 수권능력 절대결핍상태이며, 급기야 진보정당은 위헌정당으로 제소당했다. 큰 선거가 없는 올해, 이 땅의 모든 정당이 죽어있는 셈이다. 정당이 정치주체로서 정치중심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청와대 권력과 원로 및 외곽 단체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여야 간의 정당정치경쟁시스템이 사라진 것이다.
2013년 연말 한국 정치프레임은 ‘종북세력 규정’과 ‘대통령 사퇴론’의 충돌로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종북세력 규정의 주연은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장관과 국정원 원장이 나섰고, 대선 불복과 대통령 사퇴론의 주역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사제들이 맡기에 이르러, 한국 정치프레임의 중심에서 정당이 배제되었다.
정당 밖에 있는 세력과 구호가 정치를 만들어내는 구조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력 부재, 즉 대치와 충돌이 있을 뿐이다. 과연 지금 법무부 장관 또는 국정원 원장과 천주교 사제단 간의 대화와 타협이 가능할까? 절대 불가능하다. 이들은 서로를 부정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극단의 세계관도 서로를 파괴하지 않는 한 공존이 가능한 체제이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양보 없는 자해적인 극단적 체제논쟁을 지양하고, 정당 간 민주적 경쟁을 통하여 정치과정과 발전을 구가한다. 정당 없는 정치는 대화를 할 수 없고, 타협과 양보도 할 수 없어서 국민이 참여하는 정치를 할 수 없다. 정당 아닌 정부권력과 시민단체 및 외곽단체에 종속되어 있는 한국 정당정치의 체질을 시급히 바꾸어야 한다.
한국 정당은 탄생과정부터 태생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당은 모름지기 같은 정치적 이념과 정책을 추구하는 정치세력들이 모여서 궁극적으로 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집단, 즉 권력을 창출하는 단체이다. 그러나 권력을 장악한 한국의 역대 집권여당은 권력을 창출해 내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정 반대의 탄생경로를 가지고 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미국의 국부였던 조지 워싱턴 대통령처럼 정당은 붕당임으로 정당이 출몰하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정당을 초월한 무당파적 입장의 국부(國父)정치를 구사하였다. 그러나 국회가 한민당을 비롯한 야당의 정치무대로 바뀌자 대통령 선출방식을 국회에 의한 간선제에서 직접선거로 바꾸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유당을 만들었다. 자유당은 권력을 창출한 정당이 아니라 권력에 의하여 피조(被造)된 정당이었다. 한국 최초의 집권여당인 자유당의 역할이 여당을 지지하는 국민의 정치통로가 아니라, 대통령 권력에 복종하는 전위부대로 전락한 것이다. 제3공화국의 공화당이나 제5공화국의 민정당도 쿠데타로 장악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권력 피조정당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집권여당의 체질이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있다.
한국 정당의 권력 피조현상, 허수아비 광대 현상은 집권여당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소위 3김 정치로 상징되는 YS의 통일민주당ㆍ신한국당, DJ의 평화민주당ㆍ새정치국민회의, JP의 신민주공화당ㆍ자민련 또한 3김의 정치적 카리스마라는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정당이었다.
한국정당의 체질 중 1인 보스 및 독주계파와 지역주의에 함몰되어있는 증세는 3김 정치의 마감과 함께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오늘날 한국 정당정치의 역사는 오히려 후퇴와 역행을 거듭하고 있는 듯하다. 산업화의 병폐였던 이념대결형 체제논쟁의 부활, 민주화 과정에서 비뚤어진 집단이기주의의 출몰, 3김 정치의 산물인 계파정치의 건재가 2013년 한국 정당정치의 자화상이다.
정당이 정치의 중심에 서야한다. 정치 수요자인 국민으로부터 멀어진 정당은 부도난 기업과 다름없다. 한국 민주정치의 최소한의 조건은 국민이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정권교체형 여야 경쟁구도를 복원시키는데서 출발한다.
박상철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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