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유신시대 때 김추자가 부른 노래 ‘거짓말이야’에선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이라고 하여 흔한 사랑 노래임을 드러냈지만 그 노래는 금세 금지곡이 되었다.

당시 유신정권은 ‘삼선 개헌’ 등 하루가 멀게 거짓말을 해서 그 노래가 불편했던 듯하다. 금지 사유는 ‘사회 불신 조장’! 아, 그리고 김추자가 노래 부르면서 손짓을 했는데 그게 간첩들에게 보내는 난수표 해독 암호라나? 이게 또 거짓말! 이 시점에 오래전 옛일이 다시 되새겨지는 건 어인 까닭인지….

정치가는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거짓말은 거짓말로 밥을 먹고 사는 작가에게 넘기시라…. 작가는 거짓말로 참말을 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하루에도 거짓말을 수십 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아이를 키울 때 부모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게 된다. 본의는 아니지만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거짓말, 그러면 개인적으론 이 시가 떠오른다. 오래 전 펴낸 시집에 넣은 ‘아내의 브래지어’라는 시.

밤새 토악질하다 엎드려 있다/진통제 몇 알 먹고 겨우 눈을 붙인/병든 아내 머리맡에 놓인 브래지어 하나,/유행 지난 꽃무늬 장식이 요란하다./신혼 시절 떠올리며/브래지어 컵을 살며시 쥐어 본다./아무런 저항도, 아무런 탄력도 없이/그만 손 안에서 구겨지고마는 젖 주머니.//아내 가슴께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주다/옷 사이로 자꾸 숨어드는 야윈 젖을/슬며시 쥐어 본다./아무런 저항도, 아무런 탄력도 없이/쥐어지는 지난 십 수 년의 세월./“만질, 가슴살도, 없죠?/이제, 컵이, 단단한, 걸로, 바꿔야겠어요······.”/자는 줄 알았는데,/아내가 느닷없는 소리를 한다./“아니, 아직은······.”/나는 더듬거리다 애써 되묻는다./“그럼, 크기는, 몇 짜리로?” (졸시 ‘아내의 브래지어’ 전문)

당시 위 시가 수록되었던 시집을 본 여제자들의 묘한 눈총과 여독자들의 앙탈(?)에 가까운 항의성 재잘거림에 당황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들에겐 ‘병처’를 둔 시인의 상황도 낭만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정작 당황스런 일은 그 시의 발상 제공자인 아내에게서 나왔다. 아내는 ‘나는 그런 적 없는데…’라는 말을 했다. 알만한(?) 사람이 시의 상황을 부정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시의 대상자가 부정하는 건 당연하다. 사실 본인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시를 쓸 때 두 가지 상황을 보고 개연성 있게 하나로 연결하였다. 상황 하나는 ‘병처’(현진건의 소설 ‘빈처’, 소크라테스의 아내 ‘악처’(?)에 빗대어…. ‘병처’는 내가 주례를 서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인 아내의 상황.

두 번째 상황은 빨랫대에서 빨래를 걷어오다 꿰맨 젖싸개를 봤던 상황. 병석에 누워 있는 사람과 해질 대로 해진 젖싸개를 보고서 두 상황을 하나로 연결했더니 그럴싸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아주 개연성이 있어보였다. 작가는 우연도 필연도 아닌 개연을 쓴다.

나는 늘 파브르가 곤충이어서 곤충기를 쓴 게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아내와의 사이에서 그런 사건을 겪었기에 그 시를 쓴 게 아니다. 겪었느냐 안 겪었느냐 하는 것보다는 개연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게 문제이다. 그래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말을 한다.

작가는 ‘남 얘긴 자기 얘기 하듯이 하고, 자기 얘기는 남 얘기하듯이 하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정치가는 그러면 안 된다.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일까? 국민은 배를 곯든 말든 남의 일로 여기면 그만일까? 정치가의 말은 개연성이 있으면 안 된다. 정치가의 말이 그럴싸하고 그럴듯하기만 해서 되겠는가?

박상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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