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장기적으로 공부는 개인의 인적자본 향상에 도움이 되겠지만, 필기시험이란 본질보다 기교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는게 일반적이다 보니 본질적 내용보다는 출제 동향, 의도 등 시험기교 익히기에 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큰 낭비다. 회사 입장에서도 많은 응시자 중에서 극소수 인재를 가려내야 하는 행정비용이 엄청나다.
좋은 취지의 총장추천제 논란끝 취소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해 국제 경쟁을 뚫고 나가야 하는 삼성에게 뛰어난 인재를 뽑는 것은 기업 생사가 달린 중요한 결정이다. 최고의 인재를 뽑으려는 동기는 기업의 이윤추구처럼 본능적 욕구이다.
총장추천제도는 기업보다 학생들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은 대학에서 직접 걸러서 지원자를 확보하자는 효율성에 기반을 둔 방안이다. 기업은 우수한 지원자를 보다 적은 행정비용을 들여 가려낼 수 있고, 학생들은 삼성입사에 투자하는 시간을 돌려 다른 일에 매진할 수 있어 국가 전체적으로도 더 이익이다.
그런데 삼성의 채용안이 발표되자 대학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대학별 추천인원의 차등이 알려지자 여론도 당장 비판적으로 흘렀다. 우리사회가 이런 제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공평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삼성의 인재발굴 실험의 좌초는 어쩌면 한국인의 형평성에 대한 인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우리는 기업이 학교별로 차별채용하는 것엔 반대하지 않는다. 결과의 불공평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민감해하는 것은 ‘과정의 형평’이다. 총장추천제도는 도전할 기회를 앗아간다는 인식을 준다. 기회의 평등이 깨졌다는 것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현재처럼 20만명이 삼성시험을 치르는 것은 분명 사회적 낭비다. 특히 개별 취향에 따라 다양한 직업과 삶을 살아야 하는 시대에 젊은이들이 ‘삼성고시’에 목매는 것은 국가적으로 낭비다. 총장추천제가 담고 있는 좋은 취지가 현실화되기도 전에 과정상의 불공평성 시비로 끝나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삼성의 의미있는 실험을 살려내기 위해 제안하는 방안 하나는 모든 대학에 꼭 같은 추천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삼성의 안을 보면 총장추천권이 가장 높은 대학이 115명이었다. 모든 대학에 115명에 대한 추천권한을 부여하면 된다. 그러면 초기 안보다는 상대적으로 지원자들이 많겠지만, 20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며 과정상의 불공정성 시비도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삼성이 인재를 제대로 선발하지 못하면, 한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고 국가경제에도 영향을 끼친다. 개방화 시대에 자원없는 한국에서 대표기업인 삼성에서 최고의 인적자원을 선발해야 국가경제도 발전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방안도 국민이 수긍하지 않으면, 그 제도는 현실화될 수 없다. 우리의 인식구조에는 잘 나가는 사람 혹은 기업일수록, 절차적 공정성을 엄격하게 따진다.
대학에 똑같은 추천권, 효율적 선발을
삼성의 총장추천제도는 절차상 명목적인 형평성 문제에 대해 대학 및 국민들의 감성을 건드렸다. 명목 및 절차적으로 절대적 형평성을 추구하는 모양을 가시적으로 보여줘 역풍을 다독이면서도 새로운 제도가 갖고 있는 취지를 되살려내야 한다. 모든 대학에 같은 수의 추천권을 부여해도 효율적인 인재선발이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뜨거운 불에 데인 듯 삼성의 인재발굴 실험을 서랍장에 넣어두어서는 안 된다.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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