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플러스]녹취록의 증거능력

갑은 지난 1월 을로부터 전세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1억원을 빌려주었는데, 사실 을은 도박자금에 사용하기 위해 갑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이후 을의 거짓말을 알게 된 갑은 을을 사기죄로 고소하기에 앞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을과 친한 병을 시켜 을과 통화하게 한 다음 그 통화 내용을 휴대폰에 녹음하게 했다. 통화 내용에는 을이 사용용도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갑으로부터 1억원을 빌렸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갑은 을을 고소하면서 위 통화 내용을 녹취한 녹취록을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과연 위 녹취록은 을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을까?

요즘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녹취록이 증거로 제출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되는 녹취록의 대부분은 전화통화 당사자의 일방이 상대방 모르게 통화 내용을 녹음한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감청 내지 도청에 해당하므로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증거능력이 부정되는 불법감청이라 함은 제3자가 전기통신의 당사자인 송신인과 수신인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전기통신 내용을 녹음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하므로(법 제2조 제7호, 제3조 제1항, 제4조), 전화통화 당사자의 일방이 상대방 모르게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이 규정하는 불법감청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화통화 당사자의 일방이 녹음한 전화통화의 내용 내지 이에 대한 녹취록은 모두 증거능력이 인정되어 재판상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위 사안과 같이 갑이 병을 시켜 을과 통화하게 한 다음 그 통화 내용을 녹음하게 한 경우, 다시 말하자면 제3자가 전화통화 당사자 일방의 동의를 받고 그 통화 내용을 녹음한 경우 이는 통신비밀보호법이 규정하는 불법감청에 해당할까?

이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대립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전화통화 당사자의 일방이 상대방 모르게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과 달리, 제3자가 전화통화 당사자 일방의 동의를 받고 그 통화 내용을 녹음했다고 하더라도 그 상대방의 동의가 없었던 이상 통신비밀보호법이 규정하는 불법감청에 해당하고, 따라서 그 전화통화의 내용 내지 이에 대한 녹취록 등은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10. 10. 14. 선고 2010도9016 판결 등 참조). 다시 말하자면, 대법원은 통신비밀의 보호와 통신의 자유 신장을 목적으로 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의 취지나 명문규정의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전화통화 당사자 모두의 동의를 받지 않은 통화 내용의 녹음은 모두 불법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 사안의 경우 갑이 병을 시켜 을과 통화하게 한 다음 그 통화 내용을 휴대폰에 녹음한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이 규정하는 불법감청에 해당한다. 따라서 위 통화 내용을 녹취한 녹취록은 증거능력이 없어 을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게 된다.

 

서동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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