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장애인복지의 자립생활(사회모델)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자립생활 이념과 철학을 기반으로 한 장애인복지 정책들이 제·개정되기 시작했고, 국제교류가 왕성했던 그 시기에 많은 외국의 장애관련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제 우리 사회가 중증장애인들의 문화와 가치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기뻐했다.
그런데 요즘 장애인과 그 가족이 죽거나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 3월 한 달 사이에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 16건인데 지난 주말에는 또 한 명의 장애인이 화재로 인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인 많은 사람들은 이 화재의 주범이 ‘장애인등급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장애의 문제가 신체적 손상(의료모델)이 아닌 사회적 장벽(사회모델)에 기인한다고 봤을 때 우리나라의 ‘장애인등급제’, ‘활동지원제도’, ‘장애연금’등은 신체적 손상에 의존하는 개발 도상국형 복지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근래에 발생된 사건들을 보면서 자립생활(사회모델)과 탈 시설이라는 아름다운 이 이념이 자칫 장애인들에게 ‘무조건 지역에서 살라고 강요하고, 실행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방치하고 있는 이념으로 비추어 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념을 의심하기 전에 우리사회는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 즉 자립기반을 얼마만큼 구축했고 이 이념과 철학을 장애인 스스로가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고 곡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현실 점검이 필요하다.
장애인이 지역에서 비장애인들처럼 살고자 하는 자립생활 즉 보통의 삶이란 특별한 삶이 아니다. 그저 5살, 7살의 비장애아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친구와 다투고 화해하는 경험을 하는 것, 20대의 비장애인 청년이 연애를 하고 인턴으로서 회사생활을 경험하는 것, 35살의 비장애인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한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는 것처럼 장애인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때 사회는 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영유할 수 있는 자립기반을 구축해야 하고, 장애인에게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자율적일 수 있도록 권한을 되돌려 주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게 그런 보통의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얼마전 자립생활체험홈에서 불이나 화상을 입은 송국현씨는 거동이 불편했는데도 장애 3급을 받았고, 장애 2급이 아니여서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할 수 없었다. 결국에는 혼자 화재현장을 빠져나올 수 없어서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송국현씨가 지역에서 살고 싶었던 보통의 삶이란 결국 목숨을 거는 삶이였던 것이다.
스웨덴 자립생활연구소 소장 아돌프라츠카는 ‘자립생활이란 장애인인 우리가 모든 것을 해내고 누구의 도움도 거부하며, 고립되어 살겠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을 우리 주위의 다른 이들처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즉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과 자율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이날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한다. 또한 장애인이기 이전에 먼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인간(People first)로서 인간에 대한 존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희경 경기복지재단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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