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시인 T.S. 엘리어트는 그의 작품 ‘황무지’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제 1차대전(1914-1918) 직후 유럽의 인간의 무력감과 황폐한 세상을 묘사한 것이다.
사람들은 봄의 중간인 4월에 우울한 일을 겪으면 이 말을 읊조리곤 한다. 특히 금년 4월에는 세월호 사고로 인한 슬픔과 상실감으로 인해 인터넷과 언론지에 유난히 자주 인용되고 있다. 심지어 대한민국號 전체가 침몰하고 있다는 절망감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외국 언론들도 혹평을 쏟아 냈다. 나또한 한명의 가장이고 공인으로서 계속 자괴감을 가져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래도 대한민국이 희망과 가능성이 있는 나라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배가 급속히 기울어져 가는 생사의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의사자들의 살신성인 정신은 우리 모두를 눈물겹게 했다.
자기보다 어린 아이를 먼저 구조 선박에 옮긴 한 학생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한 의롭고 성숙한 시민의 모습을 보여줬다.
전국 각계각층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생업을 마다하고 약품 , 택시, 차량, 선박 등의 장비와 물품을 갖고 사고현장에 몰려들어 인명구조와 희생자 가족을 위한 봉사활동을 했다.
온 국민들도 하나가 되어 희생자와 가족들의 아픔을 애도하고 위로하는데 동참했다. 내가 합동분향실 조문이 시작된 날인 4월23일 경기도 합동대책본부에서 근무를 할 때, 교통편은 어떻게 되는지, 조의금은 어떻게 전달하는지, 자원봉사는 어떻게 참여하는지 등의 문의전화를 쉴 새 없이 받았다. 멀리 울산과 부산 등지에서 KTX를 타고 온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후 9시가 넘었는데도 300m가 넘는 행렬이 이어졌다. 단원고의 탁구팀, 유현진, 노승렬(PGA)은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노란 리본을 달고 경기에 우승함으로써 한국인들이 이웃의 아픔을 나눌 줄 아는 국민임을 국내외에 보여주었다.
연예인들은 추모곡과 성금으로 동참했다. 민간잠수사들이 암흑의 공포를 견디며 바다로 뛰어 들었고, 해당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진도, 장례식장, 분양소, 병원 등지에서 본연의 업무를 미루고 사고수습을 위해 밤낮없이 사고수습 지원임무를 수행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절망만이 있는 게 아니다. IMF 위기 때는 금모으기로,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고 때는 인간띠를 만들어 기름제거 봉사활동을 하여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그때그때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와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국민, 위기의 순간에도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의로운 사람들이 있다는 희망의 요소들이 우리가 지금의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이유다.
세월호의 비극을 준 4월은 잔인한 달이었으나 부활절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부활절은 예수의 고귀한 희생으로 인해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영원히 기억될 4월을 보내며 소중한 생명을 잃은 자들이 부활하여 이곳에서 못 다한 삶을 천국에서 누리고 대한민국이 다시 희망을 찾아 안전하고 행복한 국가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세정 경기도 GTX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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