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비본질의 본질화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들의 의식에 변화가 있다고 한다. 특히 자녀들에 대한 의식이 그러하다.

부모 입장에서 자녀는 부모가 정한 진로로 나가야 하고, 엄친아와 비교되며 무조건 공부만 해야 하는 존재로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공부하라’는 말보다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자주하고, 자녀와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갖는다고 한다.

실제로 주위를 보더라도 아이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우리는 큰일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큰 교훈을 얻고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는다. 왜 우리는 미리 생각하지 못할까.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그 중요함을 지각하지 못하고, 일의 순서가 뒤바뀐 것도 모르고 본질인양 비판 없이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자체가 생각의 적폐다.

요즘 비정상적인 관행을 없애자는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논의가 많다. 이 시점에서 ‘비본질의 본질화’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스템과 제도 그리고 원리·원칙을 바로 잡는 것이라면, ‘비본질의 본질화’는 당연히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마음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다. 직장인의 경우 퇴근 후에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얼굴을 맞대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명백한 본질이다.

그러나 승진이나 상사를 모셔야 한다는 명분으로 애써 술자리를 만들고, 휴일이면 운동한다며 가정을 소홀히 한다. 순수한 만남이라면 인간관계 형성을 위해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이렇게 비본질에 올인하고 있는 것도 생각의 적폐 때문이다.

‘비본질의 본질화’를 추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단순한 것이 답이라고 하는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답은 의외로 단순한 것에 있다.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복잡한 것만이 답인 것처럼 인식하고 생각을 복잡하게 한다. 이럴수록 생각의 찌꺼기가 많이 낄 수밖에 없다. 짧지만 정언명령(定言命令)과도 같은 짧은 것이 답이고 생각의 정수일 수 있다.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 피어’의 시구처럼 나 하나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비정상화의 정상화’ 뿐만 아니라 ‘비본질의 본질화’를 통해 정상적인 것이 통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이 시점에서 안전 불감증 뿐만 아니라 본질 불감증도 버려야 한다.

임창덕 농촌사랑지도자연수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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