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영혼의 눈

이태리 맹인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눈먼 가수는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고 미

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바람 가는 길을 느리게 따라가거나 푸른 별들이 쉬어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의 소리는 우주의 흙 냄새와 물 냄새를 뿜어낸다.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린다.

붉은점모시나비 기린초 꿀을 빨게 한다.

금강소나무 껍질을 더욱 붉게 한다.

아찔하다.

영혼의 눈으로 밝음을 이기는 힘!

저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 소리 앞에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허형만

1945년 전남 순천 출생. 중앙대 국문과 졸업. 1973년 『월

간문학』 등단. 시집 『불타는 얼음』『그늘이라는 말』

『영혼의 눈』 등 14권과 활판시선집 『그늘』, 중국어시

집 『許炯萬詩賞析』, 일본어시집 『耳を葬る』. 평론집

『영랑 김윤식연구』『시와 역사인식』 등 다수. 영국 IBC

인명사전 등재(2001~2002).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

학상, 월간문학동리상, 한성기문학상 등 수상. 한국시인

협회 심의위원장 역임. 국립목포대학교 인문대학장, 교육

대학원장 역임. 현재 목포대학교 명예교수. 국제펜한국본

부 심의위원장. 한국시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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