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법제도 안에서의 대응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그 자리에 배석한 일부 젊은 태국공무원들의 숨죽여 웃는 얼굴에서 자신들도 이런 사이트들을 이용해서 우리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이 곳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면 아르바이트로 이런 사이트들을 위해서 한국드라마 자막 번역을 하는 친구들도 제법 있다고 한다.
합법적 시장 성장 방해 요소
자국어 자막이 함께 제공된다면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손쉽게 드라마에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건 당연하다. 이제는 유튜브에서도 다국어 자막이 포함된 비디오를 찾아볼 수도 있고, 이용자들이 참여하여 수십여 개국의 언어로 자막을 제공하는 동영상 플랫폼도 서비스되고 있다. 이렇게 자막은 동영상이 국경을 넘어 서비스될 수 있는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편으로 불법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동영상 파일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조력자 역할도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미국의 주요 방송사들이 국내 자막 제작자들을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배상보다는 불법 관행에 대한 제재의 성격이 강한 것 같다는 해석도 덧붙여졌다. 미국 방송사들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서의 저작권 행사를 위한 신호라고 여겨진다.
아닌 게 아니라 정식으로 수입되어 지상파나 케이블로 방영되거나 DVD로 발매되는 외국 드라마 외에도 음성적으로 최근 방영된 미국이나 일본 드라마들을 쉽게 다운로드 받아서 자막 파일을 찾아 즐겨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자막없이 원어로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제한적인 것을 고려한다면 한글 자막의 제공이 불법복제를 확대시켜 외국드라마의 합법적인 시장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외국어로 된 대본을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한글 자막으로 바꾸는 것은 저작권법상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의 침해가 될 수 있는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또 이런 자막 파일을 인터넷에 게시하면 전송권이 문제된다.
하지만 법 위반 여부를 떠나서 많은 자막 번역자들이 대부분 영리를 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외국드라마에 대한 문화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봉사였으며 외국드라마에 대한 수요를 확대시키는 역할도 했다는 주장에는 귀 기울일 면이 있는 것 같다. 아울러 직접적으로 해당 동영상 파일을 주고받는 사이트 운영자 등을 놓아두고 자막 제작자를 목표로 한 것도 아쉽다.
외국에서 방영되자마자 각 편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에 넘쳐나는 현실을 생각하면 외국드라마를 즐기는 이용자들에게 우리 방송사가 수입해서 방영하거나 정식 DVD 발매되기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것은 가혹하다. 지금 일부 IPTV 등이 제공하는 주문형 방식의 서비스는 이용자들의 수요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문화적 영향력 감안한 정책 필요
요즘 미국에서는 최신 드라마나 영화를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볼 수 있는 서비스가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광고도 붙지 않은 동영상을 보는 대가는 월정액 기준으로 만원을 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드라마의 문화적 영향력을 감안한 정책적 고려와 함께 굳이 저작권 위반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되도록 편리하게 외국드라마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볼 수 있는 합법적인 서비스가 등장한다면 이용자와 저작권자 사이의 간격을 메워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김혜창 한국저작권위원회 방콕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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