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조선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

‘절절한 사랑’ 열연… 남녀 주인공이 살린 무대

푹 꺼진 무대의 심연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서곡(prelude)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막이 올랐다. 무대 중앙에는 하얀색 드레스(잠옷이란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를 입은 헤로인이 엎드려 있다.

무대 한편에 놓인 룰렛만이 이곳이 연회장이라고 말해줬다. 이어 등장한 여아, 청소년, 숙녀를 핀 조명이 연달아 비추고 이 가냘픈 여인은 안타까운 눈길을 보냈다. 아마도 그녀의 순수했던 과거를 묘사한 듯하다.

지난 25일 하남문화예술회관 검단홀 무대에 올려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의 서막이다. ‘축배의 노래’, ‘아, 이상해라! 그이였던가(E strano! Ah, fors’e lui)’ 등의 주옥같은 아리아를 남긴 이 작품은 주세페 베르디의 역작이다. 오페라란 장르를 국내에 처음 알린 이 작품을 국내 최고(最古) 오페라 예술단인 조선오페라단이 상연해 의미를 더했다.

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수많은 극장에서 수없이 공연돼온 ‘라 트라비아타’. 이번 무대를 앞선 작업들과 비교하기엔 한없이 초라했던 게 사실이다. 일부 연기자들은 고음에서 적잖이 흔들렸고, 화려한 군무를 선보이려던 무용단은 실수를 연발했다. 그렇다고 이번 공연을 혹평만 할 수 없는 것은 비올레타(오은경 역)와 알프레도(나승서 역)의 애절한 사랑이 절절히 묘사됐기 때문이다.

‘순정의 매춘부’ 비올레타는 처음엔 알프레도의 사랑 고백을 의심했지만, 점점 그의 사랑에 빠져간다. 아들의 격정을 우려한 제르몽(윤혁진 역)은 비올레타에게 알프레도를 놓아달라고 부탁하고, 비올레타는 눈물로 그를 포기하려 한다.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알프레도는 그녀에게 돈을 뿌리며 갖은 모욕을 퍼붓지만, 이내 그녀의 진심을 알고는 눈물로 사죄한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이미 병색이 짙어진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에게 마지막 고백을 하고 숨을 거둔다. 이때 흘러나온 아리아 ‘안녕, 지난 날이여(Addio, del Passato)’가 심금을 울린다.

꽃다운 비올레타가 무대 중앙에 스러지고, 곧 막이 내렸다. 가슴 아픈 결말이었다. 관객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고,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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