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또 하루 멀어져 가을의 문턱에 와 있다. 저녁이면 풀벌레 소리가 그리움을 노래하고, 한 낮의 햇살에 몸을 감추다가도 저녁이면 감춰두었던 이불을 주섬주섬 찾게 된다. 들판의 초목은 여름내 자연의 은혜로 빚은 열매의 가을걷이를 준비하며 더위와 비바람을 이겨낸 결과물을 자연에 다시 내놓으려 하고 있다. 가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가을은 봄과 여름의 궤적(軌跡)이기 때문이다.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을 내보낸다고 했던가. 몸서리칠 차가운 겨울날에 대비하여 뜨거운 여름의 끝을 온 몸에 담아 두고 싶다.
가을이 오면 윤동주 시인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이 시에서 인생에 가을이 오면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고, 사람들을 사랑했는지,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볼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인생에 가을이 오면 무엇을 자문할까 미리 질문지를 준비해야만 할 것 같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CD다”라고 했다. 태어나(Birth) 죽기(Death)까지 끊임없는 선택(Choice)의 연속에 놓여 산다는 의미다. 이런 선택의 결과가 인생의 가을에 맺히는 것이다. 삶도 가을의 결실처럼 앞선 과정과 노력의 궤적이기 때문이다. 결정은 언제나 외롭다. 후회하는 자만이 자신의 그림자를 본다고 하지만 후회하면서 뒤 돌아 보는 일이 적지 않다. 주위에서 조언은 해 줄지언정 최종 선택은 늘 혼자다. 그래서 삶이 늘 고독하게 느껴진다. 손남태 시인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고독은 외로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주위를 맴돈다. 혼자일 수밖에 없는 외로움으로 늘 쓸쓸하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내 나이도 지천명(知天命)이다.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나이인데, 나이 숫자만 늘어나고 몸만 커진 아이처럼 늘 후회할 행동을 자주하게 된다. 나는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무엇을 위해 달려왔고, 어떤 의미를 찾아 살아왔는지 묻고 싶다. 누구의 말처럼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는지, 나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 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며, 한 권의 책이자 공적(功績)이라는 말처럼 삶의 흔적을 얼굴에 오롯이 담으려 노력했는지도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서 인생의 겨울에는 공적처럼 쌓인 지난날을 추억하며 입가에 웃음 짓는 따뜻한 날로 맞고 싶다.
입추도 벌써 지났고, 곧 가을이 무르익는다. 이 가을은 또다시 오지만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무감어수 감어인(無鑑於水 鑑於人)이라는 말처럼 얼굴을 물에 비춰보지 않고, 사람에 비춰 누가 되지 않고, 헛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고 싶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가 보다. 왠지 멜랑콜리(melancholy) 해지고, 생각이 많아진다. 끝자락에 다다른 여름빛은 저무는 해에 서럽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가을은 마음에서 먼저 오고 이유 없이 슬퍼지는가 보다.
임창덕 농촌사랑지도자연수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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