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 일성으로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의욕적으로 출발한 지 반년 가까이 지났지만, 우리 경제는 여전히 먹구름에 쌓여 있다.
실질성장률이 7년째 잠재성장률을 밑돌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년실업률이 올 평균 9%를 웃돌고 있다. 젊은이들이 취직하기가 어려워 졸업을 유예하는 NG(No Graduation) 족이 1만 5천 명에 육박한다. 경제 버팀목이던 수출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금년도 경제성장률 전망도 4.0% → 3.8% → 3.5%로 하향 조정됐다. 민간소비 전망도 3.1% → 2.3% → 2.0%로 떨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대응이 너무 안이하다. 초이노믹스로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하기는커녕 금리를 내리고 일부 부동산 규제를 푼 것 정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계부채만 늘어나고 전셋값만 올리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이 성공하려면 정부가 일관성을 가지고 소득 수준별로 맞춤형 정책을 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 임대주택을 제공해야 한다. 중산층에게는 장기저리융자 형태의 모기지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중대형 주택에 대해서는 아예 규제를 없애 시장원리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경기부양의 마중 물을 붓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한 시장경제의 지하수, 즉 투자와 소비가 콸콸 솟아오르게 하려면 현실에 안주하려는 재벌의 체질 개선과 투자기피 해소가 관건이다.
재벌의 의사결정 구조를 혁신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회사의 명운이 달린 10조 원이 넘는 투자를 오너 혼자 독단으로 결정하는 것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에 의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재벌의 지배구조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혁신하는 일이 중요하다.
대기업들은 미국의 슈퍼 리치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은 자신들의 세금을 올려달라며 청원까지 벌였다.
지금이라도 우리 대기업들이 스스로 세금을 더 내겠다며 자임하고 나선다면, 이것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완화시키고 노사화합은 물론 사회통합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마중 물이 될 것이다. 정치가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뒷받침하는 용광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통합의 힘을 바탕으로 대기업들이 가장 자신 있는, 세계 1, 2등을 다투는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조선 디스플레이 등 분야에서 선도형 혁신을 지속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가 뒤처졌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추격형 성장을 병행해야 한다. 의료바이오(Medical-Bio), 에너지환경(Energy-Environment), 안전(Safety), 정보서비스(Intelligent Service), 우주공학(Aerospace) 등의 앞글자를 딴 ‘메시아’ 분야가 이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유치해서 재벌들이 현실에 안주하면서 불합리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치열한 경쟁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첨단산업 유치에 방해되는 중첩된 규제를 덩어리째 뽑아버리는 획기적인 규제혁파 시스템이 시급하다.
/김진표 전 민주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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