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총알배달… 고객 눈높이 ‘진화하는 책방’

[2015 책의 수도, 인천을 펼치다] 서점, 책을 지키다 ③동네서점

동네서점이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한 달째를 맞고 있지만, 인천지역 동네서점은 여전히 한산한 모습이다.

도서 할인율이 15%로 제한되는 도서정가제로 동네서점이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도서정가제가 자리 잡고 동네서점이 활기를 되찾기까지는 서점들 스스로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 도서정가제 통해 ‘부활의 날개’ 펴다

인천지역 동네서점이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새로운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동네서점은 참고서를 찾는 학생만 간간이 찾아왔을 뿐 소설이나 교양서적을 사려는 손님의 발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문가들은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할인율이 15%로 제한돼 일부 온라인 이용 소비자가 동네서점으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제도가 자리 잡고 동네서점이 활기를 되찾으려면 6개월 이상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남구에서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이경순 관교서림 대표는 “학생들 시험도 거의 끝난 상황이라 도서정가제와 상관없이 책이 많이 팔리지 않고 있다”며 “내년 3월께부터는 찾아오는 고객도 많아지고 매출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인근에 있는 대명서림 관계자도 “아직 피부에 와 닿을 정도의 차이는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도서정가제가 자리 잡으면 동네서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 ‘인터넷보다 빠른 동네서점’ 이라는 서구 연희동의 청라문고 임현일 대표가 책 배달에 나서고 있다.

동구에 있는 동네서점을 찾은 주민 이모씨(38·여)는 “동네서점이 지역경제뿐 아니라 주민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도 많은 역할을 한다”며 “동네서점이 살아야 제대로 된 독서문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도서정가제로 동네서점이 새로 태어날 기회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지금까지의 책 가격은 온라인 서점의 할인율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둔 ‘거품이 낀 가격’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할인율에 제동이 걸려 자연스레 거품이 빠지고 합리적인 책 가격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전자책과 종이책을 함께 읽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독자’가 점차 느는 것도 동네서점의 기회 요인이란 평가다.

살아남은 동네서점도 도서정가제의 본격적인 시행에 맞춰 함께 머리를 맞대고 경쟁체제에 나설 채비로 분주한 모습이다. 인천 동네서점의 모임인 인천시 서점조합은 내년 새 학기 교재부터 도서 공급가를 온라인과 같게 하고자 출판사를 상대로 공동구매 시스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동네서점이 공동 구매 시 출판사와 협상을 통해 구매 단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 차원뿐만 아니라 서점별로도 마케팅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 학생 참고서 판매가 주 수입원인 동네서점의 주 고객은 학생들이다.

일부 서점은 최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책 토론회 같은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대춘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회장은 “저자를 초빙해 사인회나 독서토론회를 수시로 열 계획”이라며 “인천을 포함한 동네서점이 그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도록 지역별 문화사업을 꾸준히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 인터넷보다 빠른 동네서점

인천에는 인터넷보다 빠른 동네서점이 있다. 서구 연희동의 청라문고(대표 임현일·45)가 바로 그곳이다.

청라문고는 지난해 8월 개업하면서 책 배달서비스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단 한 권의 책도 신속하게 배달해 주는 게 이 서점의 특징이자 목표다.

전화로 주문이 들어오면 서점에 비치된 책은 당일에, 서점에 없는 책은 도매 총판에서 구해와 다음 날 아침까지 배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책을 주문한 후 집을 비워 못 받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대에 맞춰 직접 배달해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주민에게 서점을 알리기 위해 책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임 대표는 “내 일정을 미루더라도 독자들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배달하기 때문에 지연되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아침 일찍 부평에 있는 책 도매 총판을 들르는 것으로 그의 하루가 시작된다.

전날 주문이 들어온 책이나 이미 주문이 나간 책을 추가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보통 매일 오후 4시께는 총판에서 주문한 책이 들어오지만, 그는 직접 총판을 들러 필요한 책을 가져온다. 총판에서 오는 시간을 기다리다 보면 배달시간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넷 서점은 주문하고 다음 날이면 배달이 되는데,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게 책 배달 서비스”라고 말했다.

▲ 대일문고 한켠에 수시로 반납하는 참고서들이 쌓여 있다.

배달서비스를 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다. 고객과 약속시간을 맞췄는데 집을 비워 다시 들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또 아파트 무인 택배함 사용법을 몰라 관리사무소 직원을 동원한 일도 있었다. 아직은 초기 단계라 배달 주문량이 하루 10건 정도로 적지만 배달서비스를 이용해본 주민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바쁘게 사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직접 책을 사러 서점을 찾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어서다.

그는 “현재까진 참고서를 주문하는 비율이 70%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지만, 소문을 타면서 일반소설이나 교양서적 주문도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책 배달서비스에 대한 임 대표의 전망은 매우 밝다. 그는 “인터넷보다 더 빠르게 책을 배달해 주면 아무래도 인터넷과 대형서점을 찾던 고객도 점차 동네서점을 이용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며 밝게 웃었다.

■ 인생에서 두 번째로 유익한 게 바로 책입니다

“사람한테 가장 유익한 게 여행이고 두 번째로 유익한 게 책입니다.”

인천지역 동네서점의 모임인 ‘인천시 서점조합’ 문인홍 조합장의 말이다. 그는 책을 통해 마음껏 간접경험을 할 수 있고 선현의 지혜도 배울 수 있다며 책 예찬론을 펼쳤다. 책을 많이 본 사람은 다양한 간접경험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일에 대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만, 최근 들어 책 읽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 아쉬워하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자신이 읽을 책을 고르지만, 가정을 가지면 아이들이 보는 책을 위주로 구매한다는 게 서점을 운영하면서 그가 느낀 점이다.

이 때문에 그가 운영하는 서점도 전체 매출의 80% 가까이 참고서와 아동서적이다. 이러한 여파로 20여 년 사이에 인천지역 동네서점의 폐업도 잇따랐다. 그가 1998년 인천에 서점을 열었을 때 동네서점이 350여 곳에 달했으나 지금은 학교 앞 서점을 빼면 일반서점은 채 40곳이 안 된다.

최근 새로 도입된 도서 정가제에 대해선 동네서점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기회라고 평가했다. 최근까지도 출판사는 공급가에 차이를 둬 동네서점을 외면하기 일쑤였다. 온라인서점과 동네서점 간 공급가 차이가 단행본은 40∼50%까지 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독자는 동네서점에서 책을 고른 후 인터넷에서 사보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그는 지난달부터 시행한 도서정가제가 아직까진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에 유리하지만, 동네서점 또한 스스로 경쟁력을 높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온라인서점과 대형서점에 일방적으로 밀린 형국이었다면, 지금은 15% 내에서만 할인할 수 있어 동네서점도 어느 정도 경쟁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문 조합장은 동네서점 각자의 노력과 함께 정부의 정책적인 뒷받침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정한 경쟁을 위해선 ‘판매가 정가제’가 아니라 ‘공급가 정가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출판사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에 공급해 주는 가격이 같아야 동네서점도 경쟁이 가능하단 이유에서다. 현재대로라면 출판사들이 온라인서점과 대형서점에 도매가보다 싼 값에 공급해주지만 할인율 제한으로 판매가는 더 올라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만 커질 우려도 안고 있다.

그는 “동네서점이 다시 지역주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서점들 스스로 주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마케팅을 강화하고, 정부의 동네서점을 살리고자 실효성 있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김준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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