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나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데다, 무엇보다 집을 떠나 잠자리를 바꾸는 것이 불편해서다. 수년 전 섬진강 매화 구경도 이른 새벽 출발해 그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대구 팔공산 갓바위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여행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여행 중에는 밥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요사이 텔레비전만 켜면 나오는 요리 프로그램이 달갑지만은 않다. 더 솔직히 말하면 불편하기까지 하다. ‘맛있어 보인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딸들이 결국엔 ‘엄마도 저런 것 좀 해달라’는 주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집 밥은 엄마인 내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든다. 물론 텔레비전에서 요리하는 사람은 주로 남자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아직도 식사를 준비하는 건 주부의 역할이다. 전업 주부라 해도 매일 삼시세끼 상을 차리는 건 쉽지 않다. 머릿속엔 늘 ‘오늘은 또 뭐 해먹지’ 하는 고민만 쌓일 뿐이다. 하물며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맞벌이 주부에겐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최고 인기 있는 배우자감이 ‘요리 잘하는 남자’라고 한다. 그래선지 요리학원에도 남성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는 젊은 층에만 국한된 것으로 보인다.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아내를 들라 했더니 ‘밥 잘해주는 아내’라고 했다는 조사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이달 초 발표한 ‘2015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서도 우리나라 기혼여성 중 57.8%가 가정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결과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3시간 5분인데 비해 남성은 42분에 불과했다. 가사일을 분담하는 남성들이 많아졌다고 해도 통계상으로 보면 여성의 4분의 1이 채 안 된다.
게다가 맞벌이 부부가 아닌 가정의 혼자 버는 남편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이 31분인데, 맞벌이 부부 중 남편의 하루 가사노동은 32분으로 혼자 버는 남편보다 겨우 1분이 많을 뿐이었다. 가사일을 분담하지 못하니 맞벌이를 하는 아내는 시장노동과 가사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가사노동의 남녀별 할애 시간을 외국과 비교하면 한국 여성의 노동강도가 얼마나 센지 가늠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남녀 간 노동시간 차이가 3시간 25분이나 난다. 그런데 스웨덴은 남자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이 1시간 57분으로 여자보다 1시간 40분 적었다. 미국은 남자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이 1시간 50분으로 여자보다 1시간 22분 적었다. 우리나라 여성이 하루 평균 2시간 더 가사노동에 매여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하는 한국 여성들은 늘 피곤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생활시간조사 결과’에서도 맞벌이 가구 주부와 여자외벌이 주부 88.2%가 피곤하다고 답했다. 여성이 선천적으로 남성보다 근육량이 적은데다 임신과 출산으로 뼈와 관절 등이 약해진 경우가 허다하니 힘에 부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유독 텔레비전만 켜면 요리하는 남자며, 집안일하는 남자들로 넘쳐난다. 일반 남성들이 그들을 본보기 삼으면 좋으련만, 오히려 손쉽게 차려내는 밥상을 보며 반찬 타령만 늘어가니 주부는 속상하다.
가사노동엔 너 나가 따로 없다. 가사는 주부라는 특정인만 하는 일이 아니다. 다 함께 참여해야 한다. 남편이 아내를 도와준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가사일은 돕는 게 아니라 나눠하는 것이다. 아내가 제일 맛있는 밥은 가격이 비싼, 고급 음식점 밥이 아니다. 그냥, 남이 해주는 밥이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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