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위문제가 불거질 때면 양측의 입장이 감정적으로 대립하거나 동어반복적으로 되풀이될 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성적 결론은 쉽사리 나지 않는다. 안목감정에 과학감정을 더하지만, 이렇다할만한 사료적 증거가 나오거나 미학적/보존과학적 분석이 뒤따르지 않은 채 소모적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미술계의 앙금으로 남고 있다.
지난 10일 경찰은 이우환의 가짜 그림이 최소 80여점 제작되어 상당수가 시중에 유통되었으며 이를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최소 수 십 억 원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충격적이다. 또한 한국미술품감정협회에 따르면 한국근현대 10대 인기작가 그림의 경우, 감정 의뢰품 3점 가운데 1점 정도가 가짜라고 한다.
혹자는 누군가가 조직적으로 위작을 생산해내고 있으며 그것이 소비되는 이차시장, 혹은 구조가 존재한다는 의심을 내어 놓는다. 이른바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는 시장경제논리다.
위작시비는 잊을만하면 터지는 사건이다. 감정결과가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국현대미술시장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를 가짜의 범람이라고 꼬집는 인사도 있다. 진위공방이 발생할 때면 미술계는 안목감정을 넘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통한 과학의 도움을 받아 왔다.
기운 센 몇몇에 의해 가짜가 진짜가 되는 일도 없어야하고 진짜가 가짜로 바뀌는 억울한 일도 없어야한다. 그렇다면 모두가 납득을 하고 믿을 만한 결과를 과연 누가 내어 놓아야 하는가.
미술동네의 흉흉한 기운을, 불편한 진실을 언제까지 쉬쉬할 것인가? 기왕의 관행과 관습을 합리적으로 전환하는 방식의 기구마련과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국가차원의 미술품감정상설기구를 만들어야한다.
아울러 미술품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한 종합병원 형식의 보존과학/수복연구소 설립도 미루지 말아야한다. 억울한 작가들과 아픈 작품들을 더 이상 모른 채하거나 방치해서는 안된다.
박천남 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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