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찾는 사람들] 세상살이 팍팍해도… 가족이 있어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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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결혼이주여성 멜라니씨와 남편 문영은씨가 시흥시 장곡동 자택에서 시부모님과 하트를 만들며 행복한 새해를 시작하고 있다. 오승현기자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발달로 사회적 연결고리가 증가하고 있는 반면 가족 간 대화의 창은 점점 닫혀가고 있다. 

특히 집안의 구성이 핵가족화됨에 따라 가족의 의미는 과거의 ‘운명공동체’에서 ‘동거인’으로 변모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삭막함 속에서도 새해를 맞아 경기도내 곳곳의 가족들은 각자가 처한 난관을 극복하고자 똘똘 뭉쳤다. 

경제불황과 낯선 환경, 갈등과 반목 등으로 한 해 동안 어려움을 겪은 이들은 가족의 사랑을 지렛대 삼아 희망을 외치고 있으며, 어려움에 빠진 대한민국도 가족의 힘을 통해 덩달아 희망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맞잡은 손, 다시 시작된 웃음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희망을 품게 됐으니까요!”

31일 오전 수원시 건강가정센터 상담실. 가족 간 대화 단절로 수년 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고교생 K군(18·수원)과 부모는 서로 손을 맞잡으며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인터넷과 SNS의 발달에도 불구, 오히려 보이지 않는 벽으로 인해 서로를 원망했다.

 

과거 K군은 아버지 없이는 한시도 견디지 못하는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평균성적 90점 이상을 유지하는 모범생이었으며 가정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영원할 줄 알았던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K군은 중학교 3학년 재학 당시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싸움을 하고 들어오는 등 엇나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특정 학생을 집중적으로 구타했고, 성적 역시 평균 60점대로 추락했다. 언젠가는 ‘착한 아들’로 돌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부모의 믿음도 사라졌다.

 

결국 어머니의 눈물 어린 설득 끝에 가족들은 올해 6월 수원시 건강가정센터를 찾았으나, 수년간 끊겼던 대화는 쉽사리 재개되지 않았다. 모든 오해와 불신이 굳어지면서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것조차 어색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등을 돌리고 있던 가족은 3번의 개별 상담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K군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무조건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화를 내는 아버지와 쩔쩔매는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을 일일이 지적하며 소리지르고 화내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K군 아버지(48)는 “알콜중독에 걸린 아버지 밑에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자란 탓에, 아들을 바로 잡아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면서도 “아들이 나보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는데, 점점 엇나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심하게 화를 냈던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의 눈물은 K군의 마음을 움직였다. 학교를 자퇴하려 했던 K군은 마음을 바꿔 지난달부터 다시 공부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대학진학이라는 목표도 생겼다. 

K군은 “그동안 나쁜 짓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가족들이 잡아주길 바랐다”며 “이제는 아버지가 날 믿어준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어졌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희망을 빚는 우호도너츠만두

“경제불황으로 전통시장을 찾는 이들도 줄었지만, 가족끼리 똘똘 뭉쳐 희망을 빚고 있습니다”

 

지난 30일 오전 6시께 아직 완전히 동이 트지 않은 시간임에도 평택시 송북시장 한편에 자리 잡은 ‘우호도너츠만두’는 벌써부터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새해 떡국에 들어갈 손만두를 주문하는 단골손님이 밀려들면서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40년 넘게 묵묵히 송북시장을 지켜 온 우호도너츠만두의 역사는 지난해 작고한 장귀심 할머니로부터 시작됐으며, 지금은 아들 양동욱씨(67)와 그의 아내 이정희씨(61·여)가 물려받아 운영 중이다. 여기에 양씨의 딸까지 힘을 합쳐 어엿한 가족기업의 명맥을 잇고 있다.

 

56㎡ 규모의 자그마한 가게 안에서 양씨는 지름 1m가량의 양은 대야에 밀가루와 소금, 물을 넣어 반죽을 하고 있었다. 특히 과학의 발달로 성능 좋은 반죽 기계가 널리 보급되고 있음에도, 부부는 ‘만두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손맛’이라는 신념으로 40여년째 직접 반죽을 하고 있다. 

아내 이씨는 “새해를 앞두고 3~4일 동안은 만두를 찾는 분이 많아 힘들기도 하지만 시어머니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남편의 고집(?) 덕분에 모든 작업을 손수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씨 옆에서는 아내 이씨가 반죽을 손바닥만한 크기로 떼어 내 일일이 밀대로 밀며 만두피를 만들었고, 이를 받아든 딸은 김치와 고기, 두부, 당면, 부추 등을 넣고 방금 버무린 만두소를 넣어 정성스레 만두를 빚어냈다. 가족들이 똘똘 뭉쳐 정신없이 만두를 빚어냈다. 오전 9시가 되자 손님들이 하나 둘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곳에서 만두를 사먹었다는 손님 J씨(40·여)는 “초등학교 때 엄마 손을 잡고 시장을 따라와 먹었던 만두를 이제는 10살 난 아들에게 먹이고 있다”며 “세월은 변해도 한결같은 만두 맛 때문에 특별한 날마다 가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도 이제는 추억이 됐다. 전통시장을 찾는 이가 줄어들면서 우호도너츠만두 역시 경제불황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씨는 “만두를 하루에 800개씩 빚던 시절도 있었는데,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단골손님도 많이 줄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이들 가족은 새해에는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씨는 “가족들끼리 믿고 의지하며 가게를 꾸려 나가다 보면 고민도, 어려움도 모두 지나가고 언젠가는 더욱 좋아지지 않겠느냐”면서 “새해에는 더욱 행복해지길 기대하며 가족들과 희망을 빚을 것”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필리핀 이주여성 멜라니씨

“새해에는 한국어도 많이 배우고, 한국음식도 열심히 만들어서 진짜 ‘한국아줌마’가 되고 싶어요”

 

병신년 새해를 맞아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시댁식구들과 떡국 준비에 여념이 없던 결혼 2년차 멜라니씨(26·여·시흥)는 서툰 한국말로 이 같은 소망을 밝혔다. 지난 2014년 1월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이후 두번째 새해를 맞았음에도, 여전히 모든게 어색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요리가 익숙해질 만도 한데 한국식으로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드는 일은 아직 낯설기만 하다. 그래도 시어머니를 따라 만두피에 속을 넣어 동그랗게 빚는 것이 제법 ‘한국 아줌마’가 된 듯한 모습이다.

 

사실 멜라니씨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멜라니씨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말이 많이 서툴다보니 집에서 멀리 나가지도 못하게 됐고, 결국 활발하던 성격도 내성적으로 변하게 됐다”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고향 생각이 나는 통에 눈물이 흐르곤 했다”고 털어놨다. 더욱이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멜라니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처럼 슬픔에 빠져 있던 멜라니씨에게 웃음을 되돌려준 건 한국의 가족들이었다. 남편 문영은씨(46)는 아내의 슬픔을 행복으로 바꿔주기 위해 함께 시흥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문씨는 “결혼할 때 행복하게 해준다고 큰소리를 뻥뻥쳤는데 막상 아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며 “함께 센터를 다닌 이후로 아내가 점점 미소를 되찾았고, 가정에도 웃음꽃이 피었다”고 말했다. 특히 문씨는 말동무가 없는 아내를 위해 센터 내 필리핀 다문화가정을 찾아다니며 부부동반 모임을 만들기까지 했다.

 

시어머니 최군자씨(71·여) 역시 이국에서 온 며느리의 한국요리 과외교사를 자청하고 나서는 등 팔을 걷고 나섰다. 최씨는 “며느리가 만두를 맛있고 예쁘게 잘 빚는다”면서 “싹이 보이는 만큼 조금만 연습하면 분명히 다른 한국 주부들보다 잘 할 것”이라고 칭찬했다.

 

가족들의 노력은 멜라니씨의 변화를 이끄는 데 성공했다.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던 멜라니씨는 14개월된 딸 유나양을 데리고 산책을 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간단한 장보기에도 자신이 생겼다. 멜라니씨는 “필리핀에서도 1월1일은 새로운 희망을 의미한다”며 “2016년 새해를 맞아 한국말과 문화에 적응해 완벽한 한국 아줌마가 되겠다”고 밝혔다.

안영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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