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미국 금융분석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저서 블랙스완에서 증시 대폭락과 함께 국제금융 위기를 예측하면서 월가에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는데, 그의 경고처럼 2008년 국제 금융위기가 닥치자 이 용어는 다시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는 블랙스완 같은 일이 너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5년 2월15일 영종대교상의 106중 연쇄추돌 사고는 과속과 안개 속에서 일어난 그야말로 일어나서는 안 될 아니 있어서도 안 될 끔찍한 교통사고였다.
또한 매년 5천명 수준의 생명이 교통사고로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교통사망사고는 그야말로 있어서는 안 될 국가적인 재앙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경찰통계에 의하면 2014년 지난해 하루 평균 2만 3천900건의 교통법규 위반을 하고 있고, 지난 한해 동안 교통사고가 22만3천552건이 발생 4천762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 우리나라 국민의 10대 사망원인중 하나로 낙인찍힌 지도 이미 오래전이다.
지난 초여름 떠들썩하게 찾아왔던 메르스 같은 스쳐지나가는 질병의 감염에 의한 사망자 수와는 천양지차를 보인다. 그러나 그 폐해의 심각성은 메르스에 비해 얼마나 홀대받고 있는지 참 아니러니하다.
교통안전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언급하는 교통사고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과속 운전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차량 속도를 줄여 규정 속도를 준수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든지 국내 범칙금을 선진국 수준으로 상향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자주 내놓곤 한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교통범칙금에 대한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교통사망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단 한명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범칙금을 올리자고 하면 언론은 물론이고, 국회는 국회대로 각 사회단체는 단체별로 자기만의 주판알을 튕기고 유불리를 따져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곤 한다.
동전의 양면을 보아야 함에도 오로지 세수확보 차원의 교통범칙금 인상이라는 한 면만을 보고 그것이 전체인 것처럼 과대 포장해 목소리를 키우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격이다.
과속의 경우 주요 교통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범칙금을 비교해보면 범칙금에 대한 인식차이를 피부로 느낄 수가 있다. 우리나라는 과속범칙금의 최고한도가 12만원이다. 반면 일본은 110만원, 영국 고속도로의 경우는 444만원, 이탈리아의 경우도 70만원에서 최고 430만원까지 부과하기도 한다. 우리 보다 무려 9~27배 이상 높다. 같은 OECD국가인데 그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특히 스웨덴과 핀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등 일부 교통선진국은 과거 생계형 운전자들을 감안해 교통범칙금을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교통법규 위반자의 소득에 비례하여 정한 범칙금, 이른바 일수벌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노키아 부사장 안시 반요끼에게 2002년 과속 범칙금으로 1억6천700만원을 부과한 일례도 있다.
이런 수많은 교통선진국의 교통문화가 저절로 형성된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아픔을 딛고 일어선 결과이다.
국회와 정부가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국민기초질서 확립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법규를 위반한 사람에 대해서는 경제적으로 이에 상응하는 강력한 제재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더 늦지 않게 교통범칙금 현실화를 도모하여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는 블랙스완을 하루속히 떨쳐낼 수 있길 바랄뿐이다.
김덕룡 손해보험협회 수도권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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