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11살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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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탄 소년’은 2011년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는 가족이 행복이 아닌 분노와 고통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아버지에게 버려진 11살 소년 ‘시릴’과 그의 어린 시절의 따뜻함과 그리움의 상징인 자전거, 끝없는 사랑으로 시릴을 구원하는 ‘사만다’라는 여인이 나온다.

아버지는 어릴 적에 시릴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가장 소중한 자전거를 팔아버리며 소년에게 절망과 좌절을 겪게 한다. 소년은 문제아들과 어울리며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사만다라는 구원과 희망을 통해 자전거를 되찾고 일탈에서 벗어나게 된다.

 

지난 1월 매스컴을 탄 김포의 A군은 영화 속의 시릴과 같은 11살 소년이다. 소년은 평소에 가정폭력으로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다. 소년에게는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는 어머니가 존재했다. 아버지에게 매 맞는 모습으로 비쳐진 어머니의 모습은 소년에게 더 이상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없는 대상이 됐다.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주변에 이야기했지만 사만다와 같은 구원의 손길은 없었다. 소년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흉기로 아버지를 찌르는 일을 저질렀다. 가정폭력이 존속살인으로 이어지게 된 순간이다.

 

영화 속의 11살 소년은 구원의 손길이 있었지만 김포에서의 11살 소년에게는 폭력으로부터 자신과 가정을 지켜주는 사회안전망이 없었다. 자전거 탄 소년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회적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이다. 김포에서 발생한 존속 살인사건 또한 사회적 관심과 사랑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김기영 감독은 이 영화는 버려진 아이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어떻게 한 여인이 버려진 아이를 사랑으로 구하고 동심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살해한 11살짜리 소년에게도 사만다와 같은 도움을 주는 매개체가 있었더라면 존속살인이라는 끔찍한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정폭력은 매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2015년 한국가정법률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미만 부부의 폭력 발생률은 45.5%나 된다. 여성가족부는 2014년 8월부터 ‘보라데이’를 선정했는데 보라데이의 ‘보라’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주변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시선으로 ‘함께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매달 8일을 가정폭력 예방의 날로 지정하여 가정폭력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제공하는 「꽃으로도 풀잎으로도 때리지 마라」라는 교재에서는 가정폭력을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10가지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연구소에서 발간한 교재에도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지침이 안내돼 있다. 부모의 가정폭력을 목격한 자녀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공격성을 띨 수밖에 없다. 

가정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가 다른 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번 사건도 피해자였던 소년이 한 순간에 가공할 흉악범이 된 것이다. 경찰청도 2015년을 ‘피해자 보호 원년의 해’로 정해 범죄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가정폭력으로 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범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예방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전대양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한국범죄심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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