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 축을 이룬 민주화의 시발점이 바로 4ㆍ19혁명이었다. 그리하여 현재 한국사 개설서에서는 4ㆍ19혁명이 아시아 최초의 혁명으로 통일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그 의의를 비중있게 설명하고 있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대한민국은 ‘불의에 항거한 4ㆍ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4ㆍ19 ‘혁명’에 대한 회의론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듯하다.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퇴행성 때문으로 이해된다. 역사에서 ‘혁명(revolution)’이라는 말은 적어도 이전 시대와는 다른 새 시대의 문을 연 획기적 사건에 붙이는 명사이다. 여기에는 역사가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한다고 보는 발전사관이 깔려 있다. 그런데 4ㆍ19 이전과 이후가 극명하게 달라졌는가라고 하는 의문이 바로 4ㆍ19 ‘혁명’ 회의론의 출발점이다.
이런 비판적 역사인식은 얼마 전 작고한 인문학 저술가 남경태의 역사저술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의 글을 인용하면 대체로 이런 내용이다. “혁명의 본질은 과거와의 단절이다. 우리 역사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단절의 계기가 여러 차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구체제와의 단절을 경험한 적이 없다.
대한제국의 고종이 을사늑약을 나 몰라라 하고, 순종이 한일합병조약을 물리치지 못했을 때도 우리 민중은 복종하고, 나중에는 그 못난 왕들이 죽었을 때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모여 애도해 주었다.”
한편 이와는 정반대 입장에서 이미 ‘혁명’으로 정의된 자랑스런 역사적 평가를 부정하거나 전복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결코 대한민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퇴행적 태도이다. 우리는 ‘혁명’의 완성이 장기지속적인 민족공동체의 부단한 노력에 달려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오늘을 살면서 과거 선조들이 이룩한 ‘영광’의 순간만을 회고하면서 사는 정체되고 무능한 후손들은 아닌지 돌이켜 보았으면 한다.
박성순 단국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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