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부터 공장 50여곳 들어서 시커먼 물체 쌓아놓고 소각·분쇄 집안 곳곳 시커먼 쇳가루 수북
주민들 피부병 등 각종질환 호소 區 “법적 문제없어, 현장점검 뿐”
2일 오전 10시께 인천시 서구 왕길동 180여가구가 모여 살고 있는 작은 마을. 마을 주변을 크고 작은 공장들이 포위하듯 자리 잡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산업단지에 온 듯 특유의 공장 냄새가 풍긴다. 50여년 전부터 주민들이 모여 마을을 이뤘지만, 이젠 전세를 역전당해 마치 공장들 사이에 주민들이 집을 짓고 들어선 듯한 풍경이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A씨(70·여)는 더운 여름 손자가 몸을 담그며 놀 수 있는 커다란 대야에 받아놓은 물을 가리키며 분통을 터뜨린다. 대야에는 물총 등 장난감이 떠있는데, 물 아래 대야의 바닥에는 시커먼 쇳가루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A씨는 “이게 다 쇳가루야, 쇳가루. 이걸 수십년 간 마시고 살았으니,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다 아픈 거야”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자석을 대야의 바닥에 대니 시커먼 모래알들이 자석에 덕지덕지 달라붙었었다.
인근 주민 B씨(66·여)의 집은 더 상황이 심각했다. 집안에 들어서니 마루엔 운동장만큼이나 시커먼 모래 가루로 버석거린다.
주민들과 함께 동네를 둘러보는 2시간여 동안 주변 공장에선 간헐적으로 ‘쾅’, ‘쾅’ 거리는 굉음이 수시로 들려왔다. 주민들은 이 소리를 폭탄이 터지는 소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근 공장들은 시커먼 물체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소각하기도 하고, 분쇄하기도 하는 등 소음과 악취는 물론 철 성분이 담긴 먼지를 발생시켰고, 그 먼지는 이 마을을 뒤덮고 있다.
서구 왕길동의 한 마을 주민들이 10여년 전부터 주변에 들어선 공장에서 나오는 쇳가루가 포함된 먼지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구에 따르면 지난 2003년께부터 이 마을 주변에 건설폐기물 재활용 업체 등 각종 공장 50여곳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업체들 때문에 각종 질환 등 피해를 보고 있다며, 지자체 등에 피해 및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한 주민은 “쇳가루가 섞인 먼지가 날아들어 오면서 지금 주민 대부분이 안구 및 호흡기 질환, 각종 피부병 등을 앓고 있다”면서 “또 세탁물을 제대로 널지 못하고 창문을 열지 못하는 등 생활이 너무 불편하다”고 주장했다.
최원준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철가루는 물론 먼지 속 다른 성분에 의해 진폐증이 발생할 수도 있고, 자칫 폐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업체들은 ‘합법적 기업활동이다’면서 주민 피해를 해소할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말만 수년째 반복하고 있다.
C 산업 관계자는 “최대한 주민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보고 계획 중이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면서 “우린 적법하게 영업을 하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날 심우창 서구의회 의장을 만나 마을에서 긁어모은 쇳가루 등을 보여주는 등 심각한 피해 상황을 전했다. 심 의장은 “실제로 보니 피해가 심각한 것 같다. 최우선으로 주민과 업체 간 협의점을 찾고, 여의치 않으면 더는 주민 피해가 없도록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구 관계자는 “이곳에 인허가 등 모두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주민 민원이 접수되면 현장에 나가볼 뿐, 지자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인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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