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양자시대 공존·협력이 해답”

창간 28주년, 대전환기,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이 시대 대표적 지성’ 이어령 교수가 말하는 우리의 미래
‘디지로그’ 후 찾아오는 세상 갈등·대립구도 벗어나야 윈윈
인공지능시대 선점 준비할 때

▲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할 대한민국이 국내ㆍ외에서 불어대는 큰 태풍 속 한가운데에 서있다. ‘도약이냐 퇴보냐’라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있는 우리나라에 대해 각 분야 지성인들이 뼈아픈, 그러나 약이 되는 조언을 전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어령 교수, 이외수 작가, 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고은 시인, 최진석 서강대 교수,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 김춘호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고미숙 고전평론가. 김시범·전형민·장용준·오승현기자
지(知)의 최전선에서 마주친 80대 노 장군(이어령 교수)의 눈초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전장터를 호령했던 우리 옛 영웅들의 용맹함과 지혜로움이 온몸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휘두르는 지의 칼은 탄탄한 방패(고정관념)를 뚫기에 충분했고 예리한 칼날(시대의 화두)은 거침없이 빛났다. 

주저없이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전투(시대의 과제)를 지휘했고 그 지휘봉 아래 전략 전술(시대에 전하는 메시지)은 눈부셨다.

 

이 시대가 낳은 대표적 지성, 이어령 교수(82)가 경기일보 28주년 창간 테이블에 흔쾌히 응했다. 지난 1일 오후 2시 서울에 위치한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만남은 쉽지 않은 행운이었다. 이 교수와 본지의 인연은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창조학교 명예교장으로 취임한 이 교수가 본지 신년기획 인터뷰에 응했을 때다. 그 때를 기억한 이 교수는 먼저, 경기일보 독자에게 재회의 기쁨을 전하며 창간을 축하했다. 하지만 6년 전 만남과는 반드시 달라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지(知)의 전선은 첫 순간부터 치열한 전투를 예고했다.

인터뷰 첫 화두가 ‘양자적 사고’, 즉 ‘양자시대’ 선언이었다. 이 교수가 디지로그를 주창한 때가 10년 전이다. 디지로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겹친 인터페이스 혁명을 말한다. 10년이 지난 오늘, 이 교수가 예언했던 디지로그는 어김없이 찾아왔고 또 실현과정에 있다. 그는 이제 양자적 사고, 양자 시대를 말한 것이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디지털이 아날로그로 들어가는 시대가 왔다. 알파고에 이어 이제는 포켓몬고가 상륙했다. 게임을 현실세계에서 찾는 것이다. 6년 전 바로 (경기일보와)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이제는 한발 더 나간 이야기를 해야 한다. 

오늘 얘기는 바로 양자(Quantum)사고로, 요즈음 방송 등 미디어 접촉을 사실 멀리해 왔는데 처음 얘기한 것 같아 따끈따끈한 경기일보 창간 축하선물인 듯 싶다”고 흐뭇해 하는 이 교수다.

 

이 교수가 첫 화두로 꺼내 든 양자사회 이론은 이렇다. “지금은 갑을관계가 심하게 노출돼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갑질, 을질 그러는데, 이런 고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가 남앞에서는 갑질하면서 을질로 당하게 되는 것이다. 갑을은 상대적인 개념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서로 협력해 이를 없애야 하는 시점에 왔다. 그게 윈윈하는 것이다. 

태극문양은 둘이 하나로 뭉치는 것이다. 하지만 문양 가운데를 쪼개보면 파란 것과 빨간 것, 흑과 백 등 서로 다른 것이 된다. 이 세상은 입자도 아니고 파장도 아니다. 양자로 들어가면 입자와 파장이 하나가 된다. 지금의 정보사회(전자 등) 다음에는 분명 양자사회가 올 것이다. 양자문명은 음과 양이 합쳐진 파장과 입자가 하나가 되는 문명사회다. 0과 1로 돼 있는 사회에서 0과 1이 하나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노 장군이 이끈 지의 전선은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최근 영국이 EU를 탈퇴한 시건이 바로 브렉시트(Brexit)다. 이를 두고 학계 등 전문집단은 신자유주의가 신고립주의로 회귀하고 있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미 대통령 선거에서 주목받고 있는 공화당 후보 트럼프의 두각을 그 사례로 들고 있다.

 

이 교수는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소신이 뚜렷했다. “로컬(고립주의)이 심해지면 글로벌(자유주의)화 되고 또 반대 현상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로컬과 글로벌은 대립어가 아니다. 양극주의로 가면 안 된다. 

글로벌하고 로컬이 합쳐지는 하나의 양자적 사고방식화 하는 것을 ‘글로컬’이라고 한다. 신자유주의와 고립주의 대립은 금융자본주의에서 끝났다 볼 수 있다. 어느 나라가 옛날로 가나, 착각하고 있다. 우리가 잘못 알고 미국도 민족주의로 가고 우리도 민족주의로 가자고 하면 무역은 어떻게 하나. 결론적으로 글로컬리즘이라는 긴장에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知)의 전선은 알파고에 이르러 정점으로 치달았다.

이 교수는 알파고와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을 세기의 이벤트로 규정했다. 디지털과 아나로그의 만남, 그 실행의 결정판이자 변혁의 물꼬로 자평하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 대열에서 우리나라가 가야할 미래 비전도 제시했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를 선점할 수 있는 자세 변화도 촉구했다.

 

“알파고, 그 이름에는 유럽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세기의 대결은 대한민국 한복판 광화문에서 그것도 포시즌이란 다국적 호텔에서 개최됐다. 알파고 로고를 보라, 태극무늬를 볼 수 있지 않는가. 그 문양이 양자, 둘이 아닌 하나로 이번 알파고 대국은 우리에게 큰 찬스다. 앞으로 한국이 세계에서 존재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대륙(중국)과 해양(일본)의 사이에 있는 한국은 현재로선 대륙과 해양에 붙어 연명하는 모습이지만 이 위기를 여기에서 찾고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 사고가 양자적 사고다”고 역설했다.

 

한바탕 치열한 지(知)의 전투를 치르고 난 노 장군은 잔잔한 미소로 전장에 나선 장병(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귀한 메시지를 전한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용의 눈동자를 그려넣고 또 여의주를 물려주는 화룡점정(龍點睛)의 주인공이 될 것을 당부했다. 동시에 붓을 들어 과거 신라시대 최치원이 전했다는 사자성어를 적어 나갔다. 글귀는 ‘접화군생(接化群生)’, ‘접화군사(接化群死’였다.

 

“서로 접하면 산이 막 군생해서 생명이 온 세상을 덮는다. 지금은 서로 접하면 군생이 아니라 군사야. 엑세스하면 댓글이고 뭐고 죽여. 그래서 접화군생으로 가야하는 거야. 경기도는 다양성이 있고 항상 열려져 있는 사회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야. 

변혁은 주연부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 그 변화의 물꼬와 주역이 경기도와 창간 28돌을 맞는 경기일보가 맡아주길 바랬다. 

김동수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