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를 진단하다] 유병규 산업연구원장

“지역별 경제통합 논의 활발해 질 것… 다면적 통상전략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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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취임하자마자 브렉시트라는 복병을 만난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은 “그동안 브렉시트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 해답을 제시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도 또 한 번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브렉시트가 한국 경제에 미칠 기회와 위기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일 테다. 유 원장이 서울시 은평구 한국행정연구원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 생각에 잠겨있다. 오승현기자
지금 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단어 중 하나는 ‘불확실성’이다.

 

국내외 경제 상황은 한 치 앞도 내다 보기 어려운 불확실성에 둘러싸여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외적인 요소는 물론 하반기 구조조정 본격화에 따른 불안, 김영란법 시행 등 내부적인 소비심리 위축 요소가 산재해 있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상황, 한국 경제가 난관을 헤쳐나갈 방법은 없을까. 지난 5월 산업연구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브렉시트라는 복병을 만나 한국 경제의 새 판을 짜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유병규 원장(56)을 만났다.

 

그는 브렉시트를 “경제적인 문제를 정치, 사회적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한데서 파생된 세계 경제위기의 뇌관”이라며 “위기나 기회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산업구조조정을 앞둔 한국 경제상황에서 잘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초 우려와는 달리 브렉시트의 영향이 사그라지는 모양새다. 단도직입적으로, 브렉시트가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은 어느 정도인가.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거다. 처음에 우려했던 것과 달리 브렉시트의 영향이 약화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유럽연합과 영국에 의존도가 높지도 않아 큰 어려움은 없을 거다.

문제는 브렉시트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되느냐에 달렸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과정에서 여러 불협화음이 발생할 수 있다. 그때마다 영국과 세계경제는 출렁일 거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영향이 크지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브렉시트 과정에서 예상되는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거다.

 

-타격이 예상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한국 경제의 수출 부진과 성장 둔화 아니겠나. 특히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은 세계 시장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 최악에는 영국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실물 자산시장 침체로 이어지는 연쇄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실물자산 침체가 영국과 유럽 경제에 차례로 영향을 주면, 무역이나 자산시장, 금융 등 글로벌 경기둔화로 이어진다.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각 산업에 속한 기업의 부실화, 산업 구조조정에 영향을 미쳐 구조조정이 전 산업으로 확산할 우려도 있다. 이 경우 수출 경제 부진, 성장률 둔화, 고용 문제 등이 뒤따라 온다.

 

-한국은 특히 하반기 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지 않나. 브렉시트로 인한 예상치 못한 파장을 막으려면 정부나 관계기관에서 탄탄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잘 본 거다. 국내 자본시장에는 영국계 투자금이 많아 영국 경제 불안은 자본 이탈 등 국내 금융시장 불안정성을 높인다. 이를 막으려면 크게 세 가지 방벽이 필요하다. 금융 외환 방벽, 상시 구조조정 방벽, 재정 방벽이다. 우선, 어떤 충격으로 자본 유출이 발생할지 모르는 만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과 통화스와프를 맺어 외환을 확보해야 한다.

 

두 번째, 산업구조조정이다. 현재 기업의 부실화로 일부 산업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데, 상시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가 기업활성화법을 시행해 사전적인 구조조정 시장을 만들기로 했는데 상시체제로 활용되게 보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국가의 재정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마지막으로 이에 대비해 국가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

 

-방향을 바꿔서,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없나.

물론 있다. 크게는 유럽연합의 견고한 경제정책이나 원칙이 유연화 되고, 다른 하나는 영국에 투자하는 측면에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거다. 가능성은 작지만, 영국이 탈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유럽연합의 경직된 경제 원칙들이 유연화될 수도 있다. 유럽연합의 경제정책과 원칙은 매우 견고하다. 국내 기업들 역시 현재 이러한 문제로 수출 등에 애를 먹기도 한다.

 

다른 방면으로는 영국의 우수한 투자 회사가 수익성 부실화로 매각될 때 유망한 기업을 살 수 있다는 거다. 영국 내부의 산업에 비춰보면, 국내 금융산업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세계 금융산업의 중심지인 영국의 파운드화가 브렉시트로 가치가 떨어지고, 침체하면 우리가 우수하고, 유망한 금융회사를 살 수도 있다.

 

금융산업 발전에 좋은 발판이 될 거고, 관련 서비스업 산업 역시 확장되는 기회가 될 거라고 본다. 최악과 최상의 시나리오 두 가지에 모두 대비해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시장을 잘 살펴야 한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한국과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FTA)도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영국의 브렉시트가 실현되면 수정된 FTA 조건이 나올 거다. 현재 한국과 유럽연합의 FTA가 5년차를 맞은 만큼, 성과를 점검하면서 브렉시트로 달라지는 여건을 살펴봐야 한다. 양국 간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점을 찾아서 개선하고 보완해야 한다.

 

-지금까지 지역 경제권 통합은 세계적인 흐름이었다.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지역을 기반으로 통합하며 경제권을 구축해 왔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보호주의가 강화되고, 지역경제권 통합이 약화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보호주의가 강화되는 속에서도 각 국가는 경제통합 논의를 활발히 할 거다. 오히려 보호무역주의에 대항하고자 지역별로 경제권을 묶으려는 성향이 강화될 거다. 

이에 발맞춰 한국은 다양한 경제권에 맞는 통상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동안 다양한 국가와 FTA를 활발히 맺어왔지만, 세계적으로 다양한 경제 통합논의가 이뤄지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 협약을 맺어야 한다. 다면적인 통상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세계경제의 흐름에서 한국 경제는 저성장에 맞닥뜨렸다. 어떤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세계경제는 놀랍도록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성장 잠재력과 통상 교섭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비관세 장벽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동시에 국내 산업의 고도화, 신성장 산업 발굴 등에 힘을 쏟아야 한다.

 

브렉시트는 양극화와 세대 간의 갈등 등이 중첩돼서 터져 나왔다. 한국도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양극화, 소득격차, 세대 간 일자리 문제와 갈등이 쌓여가고 있다. 사전에 극복할 수 있는 대비책 마련해야 한다. 바로 성장과 복지기반 제도를 확충하는 거다.

 

성장률을 높이면서 소득 양극화를 줄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번 브렉시트 사태는 경제적인 문제를 정치, 사회적인 문제로 해결하면서 더 큰 경제적인 역풍을 불렀다. 성장률을 높이고, 소득 양극화를 줄여 사회통합기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얘기를 하다 보니, 브렉시트는 참으로 다양한 문제가 얽혀 복잡한 형태로 나타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브렉시트 사태를 쉽게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경제적인 문제를 정치, 사회적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한데서 파생된 세계 경제위기의 뇌관이다. 당장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언제든 일시적으로 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뇌관 말이다. 그 뇌관이 터지더라도 기회로 삼을 수 있게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 게 한국경제 앞에 놓인 숙제다. 

유병규 원장은…
1988년 현대경제연구원에 입사해 25년간 경제 산업 연구에 매진하며 동향분석실장과 경제연구본부장 등을 지낸 경제 산업전문가다. 거시경제 흐름과 미시적인 산업 동향에도 정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대통력 직속 헌법기구로 부활한 국민경제자문회의 실무총괄책임(지원단장)을 맡아 주요 국정과제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지난 5월 민간연구소 출신으로는 처음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장에 선임됐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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