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 우리에겐 위기이자 기회

[창간 28주년] 대전환기, 브렉시트를 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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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일보는 창간 28주년을 맞아 브렉시트(Brexit)의 진원지 영국을 찾았다. 새로운 길을 선택한 영국민들의 일상을 들여다 보고, 브렉시트가 가져올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단한다. 사진은 왼쪽부터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유병규 산업연구원장, 채형복 한국유럽학회장, 윤종빈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형민·오승현기자
영국은 지금…

브렉시트 한 달여… 정치·경제 서서히 안정 되찾아

낙관은 일러… 세계경제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봤습니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1915년에 발표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은 지금도 애창되는 명시다. 이 시가 가진 의미는 한 세기가 지나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하나의 길만을 선택해 걸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국이 그렇다. 지난 6월23일 시행된 국민투표를 통해 20년 넘게 유지돼온 유럽연합(EU) 에서의 탈퇴를 결정하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국이 탈퇴하고자 하는 EU 또한 그 누구도 걷지 않았던 길을 걸어왔다는 점이다. 

기존의 유럽공동체(EC)를 더욱 발전시켜 지난 1993년 ‘유럽연합’(EU)으로 발돋움한 이후 통화를 통일해 경제 단일시장을 구축하고, 통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유럽은 하나의 국가로 변모했다. 세계 최초로 하나의 대륙 차원에서 진행된 정치ㆍ경제ㆍ사회공동체 실험은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그리스의 EU 탈퇴를 의미하는 ‘그렉시트(Grexit)’로 EU 탈퇴 움직임이 촉발됐고, 올해 영국이 최초의 탈퇴를 결정하면서 유럽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특히 영국은 프랑스, 독일 등과 함께 유럽 최강대국으로 꼽히는데다 금융시장을 바탕으로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 전 세계에 미친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브렉시트(Brexit)’는 올해 전 세계를 관통한 단어가 됐고, 영국의 새로운 걸음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브렉시트 투표가 있은지 한 달 후인 지난 7월19일 기자가 도착한 영국의 심장 런던은 아직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한 달 동안 영국에서는 세대갈등, 지역갈등이 거칠게 표출됐다. 이주민에 대한 기성세대의 거부가 브렉시트 찬성으로 이어졌고,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의 앞길을 막는다며 브렉시트 반대를 위한 대규모 집회에 나섰다. 

스코틀랜드ㆍ북아일랜드와 잉글랜드 간 갈등은 물론 심지어 잉글랜드 내에서도 브렉시트를 둘러싼 지역 간 시각차를 보였다. 여기에 재투표 청원과 조기총선 요구 등 각종 의견에 영국은 용광로처럼 들끓었다.

 

그럼에도 영국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요동치던 주식시장이 안정화됐고, 브렉시트 반대를 외치던 목소리들도 점차 사그라졌다. 테레사 메이 신임 총리가 부임하면서 잔류파와 탈퇴파 인원을 내각에 고루 배치하는 등 정치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경제도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정치권에 대한 영국 국민의 ‘신뢰’와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자국에 대한 자긍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고….’ 프로스트가 시 마지막에 읊조린 말처럼 영국이 걷는 길은 어쩌면 세계 경제 환경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다. 브렉시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 있는 우리도 주목하고 있다. 

이관주기자

 

전문가 4인의 제언

양극화 심화·청년 실업… 현재 한국 상황과 비슷

대선 앞둔 정치권에 포퓰리즘 공약 위험성 경고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묻는 국민투표 결과가 탈퇴 쪽으로 결론이 났다. 탈퇴 확정은 2년이 남았지만, 세계 금융시장은 흔들리고 있다. 

우리에겐 불확실성이 추가된 셈이다. 이에 본보는 브렉시트 사태가 한국 경제와 사회, 정치, 외교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전문가들을 만나 혜안을 찾아봤다.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는 대의제 민주주의 위기, 양극화 심화, 세대 간의 갈등, 난민 문제 등 영국 내부는 물론 외부의 요인도 함께 맞물린 문제들이 중첩돼 폭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브렉시트가 현실화 되면서 나타날 대외 경제의 변수를 우려하면서도 영국사회의 양극화 심화에 따른 불만과 분노,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 세대의 생존 불안, 정치인의 무책임함, 의사결정 시스템의 위기 등의 각종 갈등 요인은 한국 사회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고 공통으로 지적했다.

 

우선 대외적인 경제 위협이 저성장에 접어든 한국 경제에 미칠 우려가 큰 가운데서도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브렉시트 사태의 여파는 각국 중앙은행이 어떤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될 수도 혹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단언하며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해 브렉시트 사태를 한국경제의 기회로 작용할 발판으로 만들 것”을 주문했다. 

브렉시트가 현실화 되는 과정에서 각종 변수가 있는 만큼 유동성 공급을 통해 잘 대응한다면 얼마든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거다.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은 “브렉시트가 단기적으로는 한국경제에 큰 위협이 될 우려는 없지만, 현실화되기 전까지 세계경제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뿐만 아니라 다면적인 통상전략을 맺어나가고 성장과 복지 기반 제도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렉시트 사태는 내년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에 경종을 울린다는 의견도 나왔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민의 분노가 국민투표로 분출됐다”면서 “내년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에서도 각종 선심성 대형 국책사업 공약이 난무할 우려가 있는 만큼 포퓰리즘 공약 남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테러와 난민 문제, 양극화 문제가 전 세계 공통의 문제로 떠오른 시점에서 다시 우리의 보편적인 가치를 살펴보자는 견해도 나왔다. 채형복 한국유럽학회장은 “이번 브렉시트 사태는 난민 문제, 양극화 심화, 정보의 격차 문제 등 현재 국제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의 민낯을 압축해 놓은 것”이라면서 “국제사회의 방향은 인권과 공존, 평화, 협력을 바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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