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재능기부시대] 시즌땐 강한 승부사 비시즌엔 멋진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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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호가 인천 하늘고를 찾아 학생들에게 농구 지도를 하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선수들에게 비시즌은 휴가였다. 

대부분 시간을 가족, 지인들과 함께 보내고 병원에 다니며 부상을 치료하는 데 썼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실업과 프로팀들에게 지역 밀착형 마케팅이 강조되면서 팬과의 스킨십이 늘어났다. 

이 가운데 하나가 재능기부다. 과거엔 유명 스포츠 선수를 내세운 재능기부 활동이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낯선 광경이 아니다. 한 주에도 수차례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능기부 활동을 펼치는 스포츠단도 있다. 바야흐로 ‘스포츠 재능 기부시대’의 문이 활짝 열린 셈이다.

■ 은퇴 선수의 잊지못할 추억

“심판! 이러다가 애들 다쳐요” 2016년 인천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 농구대회가 열린 지난 7월 21일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인천 하늘고 이현호 코치의 목소리가 커졌다. 상대팀 선수 손에 얼굴을 다친 하늘고 선수가 고통을 호소했던 차였다. 경기가 중단될 법도 했지만, 심판이 인플레이를 선언하자 이현호 코치가 항의에 나선 것이다.

 

지난 시즌까지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었던 이현호 선수가 하늘고 코치를 맡은 건 3주 전부터다. 대회 준비 기간에 농구를 지도해 달라는 하늘고의 요청을 받은 전자랜드 구단이 적임자로 은퇴 선수인 이현호를 추천하면서다.

 

이 코치는 대회 전까지 총 일곱 차례 하늘고를 찾아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처음 아이들을 보고 사실 막막했어요. 말 그대로 엉망이었거든요. 기본기를 가르칠 시간은 안 되고, 급한 대로 공격에서 자리를 잡는 법과 수비 요령을 집중적으로 가르쳤어요.” 그의 속성 과외를 받은 하늘고는 4개 학교가 풀리그로 치르는 조별 예선에서 2승1패를 기록했다. 조 1위에게만 주어지는 본선행 티켓은 놓쳤지만, 기대 이상의 호성적에 학생과 교사 모두 만족해 했다.

 

“전패나 안 당하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7번 지도로 팀 모양새를 갖췄고, 2승이나 거뒀어요. 재능기부를 해준 이현호 코치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배준범 하늘고 체육교사의 말이다. 학생들에게도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이진열(16)군은 “농구를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었는데, 이 코치님에게 배울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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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 슈가글라이더즈 선수들이 버들개초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핸드볼교실을 열고 있다
■ 지도하는 선수들의 또다른 즐거움

“아이들이 먼저 제게 달려와 하이파이브를 할 때 무척 행복했어요.” 초ㆍ중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핸드볼수업에서 가장 뜻 깊은 순간을 묻자 여자 핸드볼 SK 슈가글라이더즈 손민지는 이렇게 답했다. 이처럼 스포츠 재능기부는 받는 학생들뿐 아니라 동참하는 성인 선수들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당초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 홍보와 우호 팬 확보 목적으로 구단이 시작한 것이지만, 지금은 선수들이 더 의욕적입니다. 스스로 수업 프로그램을 만들 정도니까요. 은퇴 후 진로를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선수도 더러 있습니다” 최승욱 SK 슈가글라이더즈 과장의 설명이다.

 

SK 슈가글라이더즈는 지난 2013년부터 연고지역인 의정부 소재 초ㆍ중교를 찾아 핸드볼교실을 열어왔다. 올해는 지난 6월 매주 목요일 의정부체육관에서 버들개초교 6학년 학생들에게 슈팅, 패스, 드리블 등을 가르쳤다.

당시 학생들로부터 가장 큰 호응을 얻은 이진영은 “감독님께 배우다가 직접 어린이들을 가르쳐보니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의 밝은 웃음 덕분에 마음 편히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며 “스포츠 체험에 중점을 둔 수업이라 가르치는 우리나 참여하는 아이들 모두 재미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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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시청 육상팀이 지역내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재능기부를 펼치고 있다.
■ 흥미 위주 눈높이 교육 ‘인기 폭발’

구기 종목과 달리 육상은 재능기부를 하기가 쉽지 않다. 재미있는 종목이 아닌 데다 전문적으로 하는 선수가 아니라면 훈련을 따라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난감했던 게 사실이에요. 고민 끝에 대한육상연맹이 육상을 놀이 형태로 변형해 보급한 키즈프로그램을 통해 재능기부를 하기로 했지만, ‘과연 아이들이 이걸 재미있어할까’란 걱정이 많았죠” 김용환 고양시청 육상팀 감독의 말이다.

 

우려와 달리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이들은 스피드래더, 크로스홉, 허들왕복릴레이, 유소년 투창, 정확히 던지기 등으로 이뤄진 키즈프로그램의 매력에 동화됐다고 한다. 김용환 감독은 “처음에는 소극적인 아이들도 나중에는 너무 재미있어 하더라”며 “특히 계주는 힘들어도 계속하자고 조르곤 해서 난감할 때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호응 속에 고양시청 육상팀은 이제 재능기부로 가장 바쁜 팀이 됐다. 국가대표 출신 김용환 감독은 “‘육상이 힘들기만 하고, 재미없는 종목인 줄 알았는데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줄 몰랐다’고 말씀하시는 학부모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현재는 여러 학교에서 체육수업을 진행해 달라는 부탁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고양시에서도 재능기부를 위한 예산편성을 따로 할 정도로 육상 수업의 인기가 높다”고 소개했다. 

조성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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