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법률 지식의 부족 등을 이유로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를 상정해 보자. 이 경우 변호사와 함께 법정에 출석해 보면 담당 판사는 ‘원고의 변호사’라고 호칭하지 않고 ‘원고 소송대리인’이라 호칭한다. 즉, 민사소송 과정에서 당사자 본인을 대신하여 주장과 증거를 제출하는 등 각종 변론 활동을 하는 사람을 부르는 정식 명칭은 ‘소송대리인’인 것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타인에게 자신의 소송행위를 맡기려는 사람은 ‘변호사’가 아니라 ‘소송대리인’을 선임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을까? 그렇다. 여기에서 바로 ‘변호사’가 등장한다. 우리 민사소송법은 ‘원칙적으로’ 변호사만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제87조). 따라서 친구의 아들이 법대생으로서 법률지식이 참으로 해박하다고 하더라도, 그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할 수는 없다. 이러한 행위는 변호사법을 위반한 범죄가 될 수도 있다. 위 원칙에 따라 법무사도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다만 하나의 원칙일 뿐이고, 우리 법은 몇 가지의 예외를 설정하고 있다. 우선 단독판사가 심리·재판하는 사건 가운데 소가가 1억원 이하인 사건(그 외에도 몇 가지 경우가 더 있다)의 경우에는 당사자의 배우자 또는 4촌 안의 친족으로 당사자와의 생활관계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또는 당사자와 고용 관계 등을 맺고 그 사건에 관한 통상 사무를 처리ㆍ보조하는 사람으로서 그 사람이 담당하는 사무와 사건의 내용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 변호사가 아닌 사람도 법원의 허가를 얻어 소송대리가 가능하다.
예컨대 아버지가 8천만원의 대여금 청구 소송을 하는 경우 법대생인 아들이 법원의 허가를 얻어 아버지의 소송대리인이 되어 소송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2천만원 이하의 소액사건의 경우에도 또 다른 예외이다. 이 경우 당사자의 배우자·직계혈족 또는 형제자매는 ‘법원의 허가 없이도’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상법상의 지배인이나 국가가 당사자인 소송에서 행정관청의 직원 등도 변호사가 아니지만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
위에서 보았지만, 우리 법은 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을 진행하는 금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헌법재판소에 제기하는 각종 심판 청구는 반드시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여야 청구가 가능하다(다만 가난한 사람이 심판 청구를 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국선대리인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한편, 형사소송에서도 민사소송과 비슷한 논리가 적용된다.
즉 형사소송 과정에서 당사자를 위하여 변론하는 사람은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인’으로 호명된다. 이 경우 ‘변호사’만이 ‘변호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동일하다.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의 제목이 ‘변호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종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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