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예술, 사회를 투영하다

▲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 드가는 발레리나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무희들은 멋진 몸짓과는 달리 얼굴이 흉하게 뭉개진 것을 볼 수 있다. 우아한 레베랑스를 그린 작품 <꽃을 든 무희>도 추악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여성에 대한 혐오감이 컸다. 어머니의 일탈과 모욕을 참는 아버지 사이에서 생긴 분노가 어린 시절 그에게 깊은 상처로 각인된 것으로 보인다. 드가는 그런 증오를 그림에 표현하며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심지어 친구였던 마네 부부를 그리면서 부인의 얼굴을 흉측하게 묘사하는 바람에 절교를 당했을 정도였다.

 

그의 그림에는 정장을 입은 신사들이 자주 등장한다. 반드시 그려야 할 대상물이 아닌 느낌을 준다. 당시 발레는 어린 소녀들의 신분 상승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들은 주로 하층계급 출신이었고 부유한 후원자에게 의지해서 살았다. 후원을 빌미로 행한 성매매를 드가는 몹시 역겨워했다고 한다.

 

▲
예술인들은 사물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데 익숙하다. 현상을 상징으로 바꾸는 재주를 타고난 사람들이다. 평범한 일상을 비틀어 만든 특별한 변용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른다. 작가는 글로 말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표현한다. 무용가는 움직임을 짓고 작곡가는 소리를 그린다. 문자와 물감과 몸짓과 음표는 미약하나 상징이라는 점에서 강하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우리 사회를 참담하게 유린했다. 무모한 발상이고 부질없는 짓이다. 예술인들은 눌리면 더 비틀고 저항한다. 그들은 직설로, 은유로, 풍자로 사회의 모순을 지적한다. 삶 속의 허영을 투영해 주는 거울 같은 존재들이다. 결함을 일러주는 그 거울을 깨버리면 과오를 알아챌 수 없게 된다.

 

예술을 통제하지 않으면 사회는 스스로 자정 능력을 갖춘다. 모래톱이 강물을 거르고 유속을 조절하듯이 예술은 사회를 정화하고 건강하게 한다. 민주사회는 자주와 자율이 본질이다. 자신 있는 권력자는 금기를 허물고 시민들의 상상력을 키워준다. 다음 지도자는 그런 사람이기를 기대한다.

 

주용수 작곡가·한국복지대학교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