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신고 단 한곳도 없이 재개 희망 품고 투자 이어갔지만
미뤄졌던 이자 상환 올해부터 본격화… 경영 악화 불보듯
정부 보상금도 피해액의 30% 수준… 현실적인 지원 시급
얼어붙은 남북관계 만큼 입주기업들의 경영 시계도 멈춰섰다.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으로 2004년 출범한 개성공단이 멈춰 선 것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13년 4월, 북한이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를 전원 철수시키면서 165일 동안 중단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 1년 동안 남북 관계가 개선될 만한 화해의 물꼬는 전혀 트이지 않고 있다. 다만 새 정부 출범이란 정치적 변수만이 남아 있다. 이런 가운데 공단 입주기업인들은 여전히 재가동만을 기다리고 있다.
■ 개성공단 잠정 중단 1년…고사 직전 입주기업
지난 2014년 개성공단에 입주해 피복용 고무 생산, 양말 가공 포장, 덧버선 등 3개 분야를 생산하던 협진(양주)은 공단 가동 중단 이후 피복용 고무만 생산하고 있다. 모든 것을 개성공단에 ‘올인’해 설비와 인력을 동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단이 폐쇄되면서 부랴부랴 양주 홍죽산업단지에 공장을 짓고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매출은 당연히 반 토막이 났다. 북한 근로자를 제외하고 남측에 있던 직원 가운데 3분의 1가량도 떠나보냈다. 이상협 대표는 “지금도 당시만 생각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며 “개성공단이 중단되기 불과 한 달 반 전인 2015년 12월 30일까지 기계를 개성공단에 들였는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개성공단 가동이 멈춰선 지 1년이 지났지만, 도내 38개 기업을 포함해 124개 입주기업 중 폐업 신고를 한 곳은 한 곳도 없다. 대부분 인력을 구조조정하거나 새로운 공장을 짓고 투자를 진행 중이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조업을 유지하는 이유는 개성공단이 재개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하지만, 공단이 좀처럼 재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기업과 협력업체의 몫이 되고 있다. 경기도에는 전국 개성공단 입주기업 124곳의 30%에 달하는 38곳, 협력업체(5천여 곳)의 30%에 달하는 1천500여 곳이 집중돼 있어 큰 피해가 우려된다.
특히 올해부터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경영 악화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1년간은 정부에서 각종 대출 등의 상환을 미뤘지만, 올해부터 각종 이자 상환의 압박을 받게 된다.
양말과 타이즈 등을 생산하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매스트(부천) 김현주 대표는 100억 원의 피해액 가운데 49억밖에 보상을 받지 못했다. 정부가 피해액을 산정하면서 피해액의 70%만 인정했는데, 이 가운데서도 70%만 인정받았다. 더 큰 문제는 올해부터다. 지난해 수출입은행에서 대출받은 15억 원에 따라 낸 이자만 9천800만 원이다.
매출이 30% 줄어든 상황에서 올해는 이자가 더 불어나 1억 2천여만 원을 내야 한다. 이희건 경기개성공단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지난 1년간 입주기업들이 정부의 지원금으로 급한 불을 간신히 꺼왔다면, 올해부터는 각종 채무 압박으로 경영 위기에 처하는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우려가 있다. 정부의 제대로 된 피해보상과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피해액 산정을 놓고도 정부 측과 기업 측의 온도 차가 크다. 6일 개성공단기업협회 측에 다르면, 기업들은 피해액을 1조 5천억 원 이상으로 산정한다.
토지나 건물 기계장치 등 투자자산이 6천억 원, 원부자재 등 유동자산 2천500억 원, 갑작스런 철수에 따른 위약금 1천400억 원, 개성 현지 미수금, 개성공단 중단 가동 1년간의 영업손실과 영업권 상실에 따른 피해 등을 더하면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하지만, 지난해 5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정부가 집계한 피해액은 7천779억 원이다. 이중 정부는 지난해 말까지 총 4천887억 원 규모의 지원을 마무리했다.
정부 산정 피해액의 60%, 협회 측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는 “이 중 70% 정도는 보험금이고, 나머지 30%는 무이자 융자다. 보험금은 공단이 재가동되면 다시 되돌려줘야 해 보상이 아니라 일시적인 지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성공단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정부는 경영정상화 지원을 말하지만 그 지원은 피해액 대비 3분의 1 정도의 무이자 대출 성격의 지원”이라며 “실질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위법한 통치행위에 대한 합당한 정부 대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올해 내 재개, 여전히 녹록지 않은 상황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내 정치적인 문제에다 국제적인 정세 역시 만만치 않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예고하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강경 대응을 공언하는 것을 고려할 때 올해 내에 개성공단 문제가 풀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개성공단 재가동과 관련해 국내에서 사회적인 합의를 하기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김현주 매스트 대표는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개성공단이 문을 닫았지만, 누구 하나 공단 업체에 대해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며 “그럼에도, 남북이 한민족인 만큼 개성공단이 다시 가동할 거라는 믿음은 변치 않고 있다. 하루빨리 재개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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