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만리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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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北京)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달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에 자주 가 볼 수 있어 좋았다. 만리장성은 외국인뿐만이 아니라 중국인도 꼭 가 보아야 할 명소로 여긴다. 베이징 시내에서 멀지 않은 빠다링(八達嶺)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친필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훌륭한 사나이가 아니다(不到長城 非好漢)’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그 길이가 만리(萬里)에 이른다고 ‘만리장성’이라고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그냥 ‘장성(長城 창청)’이라 하고 영어식 표현도 ‘그레이트 월(Great Wall)’이다. 만리장성은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지구의 반대편에서도 건설될 것 같다. 새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경안보 강화를 이유로 멕시코와의 국경 3천144㎞에 국경장벽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한다. 불법 월경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고용을 빼앗고 치안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경제격차로 멕시코와 과테말라 등 중남미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인생을 위해 불법으로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넘는다. 미국의 불법 이민자가 1천100만 명에 이르고 그 절반이 멕시코 출신이다.

 

전문 브로커는 1인당 7천 달러로 불법 월경과 함께 미국 남부 주요 도시까지 안내해 준다. 돈이 없는 월경자는 내륙의 뜨거운 사막을 넘으면서 독사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기도 하고 해안가의 바다를 통해 건너다가 익사하기도 한다.

 

멕시코와의 국경 서쪽 끝인 캘리포니아에서 애리조나주까지 1천49㎞는 이미 나무 장벽에 철조망이 쳐져 있고 감시 카메라도 설치되어 있다. 동쪽 방향으로 뉴멕시코 주와 텍사스 주까지 나머지 2천95㎞는 리오 그란데 강을 따라 건설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장벽 건설에 소요될 수십조 원을 멕시코 정부에 부담시킨다고 하여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계획된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2천여 년 전 천하를 통일한 중국의 진시황(秦始皇)이 흉노족 등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하지만 성벽이 진나라를 지켜주지 못했다. 미국의 만리장성도 같은 운명에 빠질지 모른다. 지난 100년간 인력이 부족한 미국의 경제발전에는 멕시코에서 건너온 불법이민자들의 역할이 컸다. 값싼 노동력이 미국 각지의 농장이나 공장에 고용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의 하나인 텍사스주가 반 이민정책을 내세우지만 위험하고 힘든 이른바 3D 업종은 불법 이민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불법 이민자의 유입이 줄어들고 기존의 불법 이민자가 추방되면 텍사스 주민들의 불편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언과 달리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존 켈리 국토안보장관은 최근 멕시코를 방문하여 불법 이민자의 대규모 추방은 없을 것이고, 불법 이민문제는 멕시코 정부와 긴밀한 협조 아래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안심시키고 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미국과의 경제 격차가 있는 한 불법 이민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일방적으로 장벽을 쌓기보다는 선린우호정책과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개선하여 이웃 나라를 부유하게 하면 불법 이민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으로 생각된다.

 

유주열 前 베이징 총영사·㈔한중투자교역협회자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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