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안개… 한 순간도 미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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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복잡한 내부의 정치적 상황에다 밖에서 밀려드는 말레이시아 암살사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로 얽힌 중국과의 관계, 독도와 위안부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일갈등, 취임 후 어떤 불똥을 만들지 모르는 미국 대통령의 기행에 가까운 정치상황 등이 얽히고 설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혼란스럽다.

 

오리무중. 오리(2㎞)나 되는 안개 속에 갇혀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의 처지나 정세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말이다.

 

생활 속의 안개는 여러 가지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고속으로 주행할 수 있는 도로에 짙은 안개가 끼는 것은 자칫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얼마 전 서해대교에서 발생한 대형 참사는 이런 안개를 사고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사고의 원인으로 안개를 핑계대기 전에 자신들의 운전습관을 돌아보고 그런 지역에서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운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안개는 땅에서뿐만 아니라 공중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에게도 위협적인 자연현상이다. 첨단 장비를 갖추고 전천후 운항이 가능한 비행기라 해도 기내에서 안개 자욱한 바깥세상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안개는 우리가 한번쯤 되돌아 봐야 할 칭찬거리도 있다. 안개가 끼었다가 갠 날은 대부분 후련하다 할 만큼 하늘이 청명하다.

 

이것은 안개를 구성하는 수많은 물방울들이 가진 정전기적 인력에 의해 대기 중에 떠 있던 크고 작은 먼지입자가 물방울과 결합해 땅으로 내려오면서 자연스러운 공기정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먼지가 제거된 환경에서 생겨나는 강한 햇살은 식물의 생육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안개나 습기를 머금은 거대한 공기 덩어리가 움직이며 만들어 내는 대기 정화력은 에너지나 시설, 관리비용, 공간 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의 힘으로는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순식간에 해 내는 기계와 같다.

 

도시에 질서 있게 배치된 가로수와 인공적인 호수, 크고 작은 소수로(小水路)들은 이러한 습기 공급원이 되어주므로 대기오염의 속도나 정도가 훨씬 강한 도심 대기 중의 먼지들을 자연적이고 효과적으로 제거해줄 수 있는 대단히 좋은 자연적인 기계장치가 될 수 있다.

강과 하천 그리고 나무와 숲에 자리 잡은 야생의 동물들에게 있어서 짙게 발생한 안개는 프라이버시를 유지해 주는 좋은 시설물의 하나다. 실제로 대부분의 동물들은 안개가 짙은 상황에서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은신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안개나 습기와 만나 건강과 물리적 환경에 위협이 되는 산성 물질로 변하게 되는 것들도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우리가 무책임하게 만들어 낸 것들이다.

 

한때 산업화의 폐해(弊害)로 안개와 연기가 만나 최악의 환경재앙인 스모그로 인해 많은 분들이 희생된 적이 있다. 인간의 활동으로 야기된 이런 현상은 자연이 만들어 준 축복을 얼마나 극단적으로 뒤바꿔 놓을 수 있는지를 스스로 입증해 낸 쓰라린 교훈이다.

 

정치와 경제가 풀려나가지 않으면 안개정국이니 안개경제니 하며 멀쩡하게 제 임무를 다 하고 있는, 지구와 함께 태어나 이 땅을 가꿔온 안개에 빗댄다. 안개는 내게 “기분 나쁘다”고 한다.

 

자연은 안개를 만들었지만 그 속에 편견을 넣어 두지는 않았다. 이제 안개 속에 더 깊이 들어서고 더 오래 머물러 보자. 거기에는 아직 찾아내지 못한, 어지러운 난국과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로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박병권 한국도시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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