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금융소비자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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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옷을 살 때 판매직원의 잘 어울린다는 코멘트를 전적으로 신뢰하는가? 어시장에서 물 좋고 싼 생선이란 말을 듣고 첫 번째 상점에서 바로 장보기를 마치는가? 당신의 답이 “아니오” 라면, 당신은 신중한 소비자다. 그런데 이런 깐깐한 소비자도 일상적으로 호갱이 되는 곳이 있다. 바로 금융기관이다.

 

금융상품은 그 내용이 복잡하고 생소한 경우가 많아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없다면 상품과 관련된 위험요인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개의 금융소비자는 전문가의 조언을 구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일례로 최근 몇 년간 브라질채권이 엄청나게 팔렸는데 브라질 경제에 통달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게다가 진짜 심각한 문제는 그 소위 전문가가 대부분 금융상품의 판매자라는 점이다.

 

어떤 금융상품을 파느냐고 물었을 때 영업직원으로 근무하는 후배가 들려 준 얘기는 충격적이다. 판매 1순위는 캠페인이 걸린 상품. 회사에서 전략적으로 미는 상품으로 판매실적이 매일 체크된다. 2순위는 수수료가 높은 상품. 당연히 회사 실적에도, 직원 성과급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3순위는 고객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상품. 꼭 챙겨야 하는 고객에게 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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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가 금융기관으로 불리는 것은 자본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주는 공공재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지만 그 기본은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이다.

 

지난 몇 년간 금융소비자에게 금융상품을 팔면서 중요한 내용을 충분히 알리지 않는 불완전판매를 방지하기 위한 많은 제도와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금융회사에게 면책특권을 주기 위한 온갖 확인서만 늘어나 귀찮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고객과 회사, 직원의 이해관계의 균형을 잘 찾는 회사가 경쟁력이 있는 회사다. 소비자에게 3순위 대상 고객이 되거나 알아서 판단하라는 무책임한 금융회사는 언젠가 제대로 된 경쟁자가 나타나면 소비자의 버림을 받을 것이다. 그 때까지 금융소비자는 금융회사가 내 편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추신: 후배는 이미 잘 타일렀습니다.

 

이서구 가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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