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동일본 대재난과 역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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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지진관측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매그니튜드 9.0)으로 도쿄를 포함한 동일본지역 전체가 흔들렸던 동일본 대재난이 발생한 지도 벌써 6년째다. 필자는 대지진 하루 전인 3월10일 일본근무를 위해 도쿄에 도착했다. 다음날 오후 사무실에 첫 출근하여 책상에 앉자마자 별안간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하여, 벽걸이 TV가 덜커덩거리고 화병이 넘어지고 책장의 책들도 무너져 내렸다. 

진동이 다소 잦아들어 건물 밖으로 대피하니 여진으로 건물들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 거리 어디에도 눈에 띄는 건물손상은 없어 보였다. 오래된 건물들은 내부가 엉망이 되기도 했다지만 그 큰 흔들림에도 파손된 건물 한 채 없을 정도로 대도시 도쿄의 지진 대비는 탄탄했다.

 

문제는 땅 흔들림이 아니었다. 지진이 초래한 거대한 쓰나미, 그것이 재앙이었다. 진앙지에 가까운 일본 동북지역의 해안지방은 초대형 쓰나미로 쑥대밭이 되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도 삼키고 해안 지역의 집들은 파도에 실려 뭍으로 떠밀려 올려졌다.

해안가 평지대는 수 킬로미터까지 휩쓸리기도 했다. 피해는 엄청났다. 사망자 1만5천여 명, 행방불명자 2천500여 명. 당시 피난민은 47만여 명이었고, 6년이 지난 지금도 12만 3천여 명이 피난생활을 하고 있을 정도다. 대지진 후 한동안 TV에서 반복해서 방영되는 쓰나미 위력을 보며 사람들은 자연이 빚어낸 재난의 참상에 공포와 무력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동일본 대재난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역사의 교훈을 잊어서 초래된 인재(人災)였다고 생각됐다. 우선 쓰나미로 황폐화된 해안지대에서 집 한 채 희생자 한 명 없는 마을이 화제가 됐다. 미야코시 아네요시(宮古市 吉)라는 주민 11세대 40명의 조그만 마을이다. 해발 60m 마을 어귀에는 ‘이곳에서부터 아래로는 집을 짓지 마라’ 는 선조의 경고를 담은 석비가 서 있다. 이 석비의 가르침을 지켜온 주민들은 동일본대재난 당시 선조들이 남긴 교훈의 엄중함을 새삼 절감했다고 한다.

이 마을은 1896년 대쓰나미 때 주민 60여 명이 사망하고 생존자는 단 2명뿐이었는데, 약 40년 후 1933년 대쓰나미 때는 주민 100여 명이 사망하고 오직 4명만이 생존하는 괴멸적 손해를 또다시 입었다. 이후 주민들은 주거지를 고지대로 옮기고 석비를 세웠던 것이다. 동일본대재난 때는 쓰나미가 석비 앞 70m에서 멎었다 한다.

 

이와는 반대의 사례가 보다 흔했던 것 같다.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에 나미와케(浪分) 신사가 있는데, 이는 과거 쓰나미로 침수된 지역과의 경계선에 1702년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바다 쪽으로 집을 짓지 마라’는 교훈은 세월이 흐르면서 잊히고 후대에 전승되지 못했다.

 

이 신사에서 해안까지 직선거리는 5.5㎞. 그 사이에 크고 작은 시가지와 마을들이 세워졌고 6년 전 쓰나미로 그곳은 초토화됐다. 어떤 형태의 재난이든 반복되고 그래서 역사가 있다. 그래서 어떤 공동체가 과거 재난으로부터 교훈을 남기지 못하거나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를 3ㆍ11 동일본 대재난에서 다시금 생각해 본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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