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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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삶의 주변 여건을 만들어 주는가. 많은 원인이 상존하는 가운데 핑계와 변명들이 있겠지만 결국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를 떠나서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요즘 뜻하지 않게 적잖은 심적 혼란을 겪고 있다. 나는 이럴 때면 제법 먼 거리 긴 시간을 뛰거나 묵주를 들고 걷는 것을 좋아한다. 올 1월18일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과 통합한 파주 영어마을이 거꾸로 캠퍼스, 체인지업 캠퍼스 등으로 아직 제 이름을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미래사회를 이끌어 갈 창의력과 인성을 갖춘 인재 양성의 시대적 과제를 안고 부푼 꿈으로 희망차게 출발했으나 아직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고 있으니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오늘 걷기를 선택했다. 푸르게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이 탁한 가슴에 상쾌한 공기를 뿜어주며 반갑게 반기고 운동을 위해 찾은 사람들의 열기로 둑길은 생기가 돋아나고 광명과 금천구를 잇는 징검다리에 어린아이들이 조잘거리며 노는 모습은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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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멈춰 생각해본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를 따지기 전에 미래형 교육 보급과 확산을 위한 시도가 출발 선상에서 한 걸음도 못 나아가고 있는 현실을 우리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있다.

우리는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감을 알지만 넘침에는 그 감사함을 알지 못한다.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결코 적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채울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파주 영어마을에는 경기도 교육을 고민하는 분들이 서로 협치의 정신으로 다가선다면 함께 크고 위대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교육 콘텐츠를 양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파도가 없는 바다가 없듯이 굴곡이 없는 좋은 결과는 없다. 이제 3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곧 24절기 중 다섯 번째 절기, 청명(淸明)이다. 청명이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으로 이 무렵에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로 바야흐로 농사의 준비 작업이 시작된다.

 

대지 27만8천252㎡(축구장 39개 정도), 건물 49동, 745명 수용 숙소. 이 거대한 경기도의 교육 인프라인 파주 영어마을이 청명 절기에 기지개를 활짝 켜기를 바랄 뿐이다. 추위를 몰아내고 새롭게 찾아온 봄처럼 영어마을 역시 새로운 목적과 기능으로 출발하여 이곳을 통해 교육의 즐거움을 느끼고 삶의 변화를 체험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김경표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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