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당시에는 정궁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을 비롯하여 많은 궁궐이 있었다. 정문은 승평문이었고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다. 세워진 이후 약 39년 가량 사용됐으나 1270년 강화조약이 맺어져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다. 궁궐터가 남아있는 이유로 이후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후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다.
이처럼 강화 고려궁지는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곳이다. 문화재청 제공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